[박영순의 커피인문학] ‘시작은 부드럽게’ 카푸치노의 아름다운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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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박영순 <아시아엔>?’커피’ 전문기자] “험한 산에 오르려면 처음엔 천천히 걷는 것이 필요하다.”

새해 덕담으로 적잖게 회자되는 셰익스피어의 명언은 커피애호가들에게는 카푸치노(Cappuccino)를 떠올리게 한다. 제 아무리 커피를 좋아하는 마니아라고 해도 아침에 눈을 떠 첫 모금으로 마시는 커피라면 되도록 부드러운 것을 찾기 마련이다.

커피에 우유를 넣어 마시는 것은 이런 심정에서 시작됐다. 위장이 약했던 독일의 멜리타 여사가 잉크가 번지지 않도록 덧대는 종이에 커피를 걸러 마심으로써 드립커피의 장르를 연 것도 같은 이치다. 찬물로 성분을 우려내는 콜드브루(Cold Brew)커피, 일명 더치(Dutch)커피도 사실 카페인보다는 위장장애를 유발하는 지방산의 추출을 줄이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에서 비롯됐다. 무슨 일이든, 그 시작은 욕심을 내지 말고 무리하지 않도록 하라는 가르침은 이처럼 커피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커피가 우유와 하모니를 이룬 것은 1660년경 주중 네덜란드대사였던 니우호프가 중국인들이 차에 우유를 넣어 마시는 것을 따라한 것에서 유래했다는 견해가 있다.?커피에 우유를 곁들이는 메뉴는 카푸치노(Cappuccino), 카페라떼(Caffe Latte), 카페오레(Cafe au Lait), 카페 마키아토(Cafe Macchiato), 플랫화이트(Flat white), 브리브(Breve) 등으로 발전했다. 이들 메뉴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를 아는 것은 커피에 대한 사랑을 가늠하는 지표가 될 만하다.

우유 100ml로 거품을 내 125ml로 만든 거품우유를 에스프레소 25ml에 부어 만든 것이 이탈리아 정통 카푸치노이다. 그 뿌리는 이탈리아 탄생이전인 16세기 신성로마제국시절 합스부르크 왕조에까지 닿는다. 17세기에 비엔나의 커피하우스들에선 ‘Kapuziner(카푸치너)’라는 메뉴가 등장했다. 커피에 따뜻한 우유를 섞은 카푸치너의 색깔이 카푸친 수도사들이 입은 예복과 비슷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태리 에소프레소 칵테일

이태리 에소프레소 칵테일 <사진=박영순>

카페라떼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침마다 모카포트로 추출한 커피에 데운 우유를 부어 마신 습관에서 시작됐다. 이탈리아 아침식탁에 오른 원조 카페라떼에는 거품이 없었다. 이것이 이탈리아 밖으로 퍼지면서 한 잔 분량이 240ml 이상 불어났고, 위에 12mm 우유거품층을 만드는 것이 미덕이 됐다. 이에 비해 카푸치노는 거품층이 20mm를 형성할 정도로 더 두텁다. 같은 양의 우유를 사용했더라도 카푸치노는 거품이 더 많기 때문에 카페라떼에 비해 커피 맛이 상대적으로 더 강하게 느껴진다.

카페라떼가 호주와 뉴질랜드에 가서는 플랫화이트로 정착했다. 이 음료는 우유거품층이 5mm 정도여서 커피의 맛이 더욱 부드럽게 혀에 감긴다. 브리브는 카페라떼를 미국식으로 변형한 것인데, 우유의 양을 절반으로 줄이고 지방함량이 15% 정도인 싱글크림으로 나머지를 채운다. 달콤하고 부드럽기 때문에 디저트음료로 커피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프랑스말로 우유를 뜻하는 오레를 붙인 카페오레는 1900년대부터 유럽 대륙의 서쪽지역 국가들에서 자주 언급됐다. 그러나 정작 프랑스인들은 커피에 우유 또는 크림을 넣은 음료를 ‘카페 크렘(Cafe creme)’이라고 부르길 좋아한다.

카페 마키아토(Macchiato)는 에스프레소에 우유 거품의 흔적을 살짝 남기는 이탈리아 커피애호가들의 전통에서 비롯됐다. 마키아토는 ‘얼룩진’ 또는 ‘점찍다’라는 뜻이다. 찬 우유를 넣으면 ‘마키아토 프레도(Freddo)’, 따뜻한 우유를 첨가하면 ‘마키아토 칼도(Caldo)’라고 부른다. ‘라떼 마키아토(Latte Macchiato)’는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넣는 카페 마키아토의 제조법을 뒤집어 우유에 에스프레소를 부어 하얀 바탕에 커피색 모양을 낸다.

이탈리아 정통 마키아토는 에스프레소와 우유거품만으로 만들지만, 스티밍한 우유를 넣는 곳도 많다. 마키아토에서 우유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향미적 특성은 카페라떼를 닮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