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의 커피인문학] 생두 다이어트의 진실···“살 빠진다”며 커피 생으로 권하는 사회
생두를 살짝 볶아도 폴리페놀 성분 의미있게 남아
[아시아엔=박영순 커피전문기자]
“커피생두 좀 구해주세요.”
“그 상태로는 못 드십니다. 볶아야 향미와 좋은 성분을 우려낼 수 있어요.”
“삶아서 물처럼 마시려고요. 커피생두를 먹고 1주일에 7kg을 뺐다던데요.”
요즘 볶지 않은 채로 커피생두를 먹으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무슨 사연인가 싶어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몇몇 TV프로그램이 “커피생두가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고 다룬 뒤 쇼핑몰의 핫아이템으로 부상한 것이었다.
다이어트를 위해 생두를 먹으라고 부추기는 내용들을 정리하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커피생두에는 클로로겐산(Chlorogenic acid)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블루베리보다 5배쯤이나 많다. 클로로겐산이 혈당을 조절하고 지방의 연소를 돕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다. 또 클로로겐산은 항산화 효능도 뛰어나 암 예방과 피부 노화 억제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데미무어나 제니퍼 로페즈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공식 행사를 앞두고 급히 살을 빼야 할 경우 커피생두를 먹는다.”
클로로겐산이 다이어트 효과를 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커피생두가 ‘살을 빼주는 요술방망이’인 것처럼 비쳐져선 안 된다. 노출의 계절로 접어들면서 청춘남녀들의 다급한 사정은 알겠지만, 이런 관점은 문제가 있다.
커피생두 다이어트에 대해 의사들은 대체로 “커피 생두에 들어 있는 폴리페놀(클로로겐산) 등 항산화 성분은 당뇨환자의 다이어트에 도움을 준다”며 그 대상을 제한한다. 쉽게 말하면 혈당이 높아지면 인슐린이 분비돼 혈액 속에 과다해진 포도당을 지방으로 바꿔 축적한다. 이 때 축적되는 지방이 한마디로 ‘살’인 것이다. 이 대목에서 클로로겐산이 있다면 인슐린의 작동을 저해하는 방식으로 지방의 축적을 막아준다는 것이 ‘커피생두 다이어트 예찬론’의 골자이다.
이런 기대감 때문에 커피생두를 찾는 것이 과연 효과적일까? 불필요한 살을 빼고 싶다면 혈당이 올라가는 속도인 ‘혈당지수(glycemic index: GI)’가 낮은 음식을 가려먹는 식이요법으로 인슐린의 분비를 자극하지 않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먼저다. 인슐린은 혈당을 간이나 근육으로 보내 글리코겐 형태로 바꿔 에너지로 축적시키는 역할 등도 하기 때문이다.
비위생적 생두, 되레 건강해칠 수도
클로로겐산을 섭취하기 위해 굳이 볶지 않은 커피생두를 먹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도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클로로겐산이 비록 열에 약하지만 통상 드립커피용으로 볶는 정도라면 절반 가량 남아 있기 때문이다. 커피열매의 과육을 벗겨내고 끈적이는 점액질을 물로 닦거나 건조하는 과정을 안다면, 포대에 담긴 채로 창고에서 1년을 묵힌 생두를 물로 끓여 마시는 것을 상상조차하기 힘들다.
더욱이 향미 그윽한 한 잔의 커피로 즐기는 대신 생두 끓인 물을 마시거나 분말을 물에 타 먹어야 하는 이유를 ‘카페인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 또한 억지다. 카페인은 로스팅을 거쳐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커피생두에도 거의 동일한 양의 카페인이 들어 있다. 커피생두를 섭취하는 것이 카페인을 피해 클로로겐산만을 많이 섭취할 수 있는 지혜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기만(欺瞞)이다.
커피생두 다이어트는 2012년 심장외과 전문의인 메멧 오즈(Mehmet Oz) 박사가 TV에서 처음 언급했다. 학계가 이 효과를 학술회의를 통해 확인한 것은 2014년으로, 불과 2년밖에 안됐다. 그 확인이라는 것도, 비만환자 16명에게 음식과 함께 커피생두 추출물을 투여해 12주 동안 7.7kg의 감량 효과를 봤다는 것이다. 후속 연구에서도 커피생두 추출물 섭취군이 섭취하지 않은 군에 비해 12주간 2.55kg 더 감량했다는 정도다.
추출물도 아닌 커피생두 분말만 먹고 1주일에 7kg을 뺄 수 있을 것처럼 말하는 것은 ‘얄팍한 상술’이라고 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