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의 커피인문학] 콜드브루와 더치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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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리며 추출하는 일본식 워터 드립(Japanese cool water drip). 네덜란드인들이 즐겼다고 해서 ‘더치커피’, 교토에서 유행이 시작했다고 해서 ‘교토커피(Kyoto coffee)’라고도 불린다.

?[아시아엔=박영순 <아시아엔> 커피전문기자] 콜드브루 커피(Cold brew coffee)와 더치커피(Dutch coffee) 중 어느 게 먼저일까? 커피애호가들에게는 ‘닭과 계란의 논쟁’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주제다. 사실 양측이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구별하는 수준을 넘어 선후를 따질 정도라면 준전문가 반열에 들어섰다고 할 만하다.

콜드브루는 “찬물로 커피성분을 추출한다”는 의미다. 브루는 “와인이나 맥주를 양조하다”는 뜻으로 주로 사용하지만, “물로 커피나 차의 성분을 우려내다”는 쓰임새도 있다. 반면 더치(Dutch)는 ‘네덜란드의~’라는 형용사로, 더치커피를 직역하면 ‘네덜란드 사람들의 커피’가 된다. ‘비용을 각자 부담한다’는 뜻으로 통용되는 ‘더치페이(Dutch pay)’만큼이나 엉터리 표현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계산을 각자하는 인색함이 풍기는 표현에 자신들이 비유된다는 점을 몹시 황당해한다. 그 강도만큼이나 찬물로 똑똑 우려내는 커피의 명칭에 ‘더치’가 사용된 것도 의아하게 생각한다.

더치커피는 일본인들이 만든 조어다. 에도막부시대(1603~1867)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리스도교 포교를 금지한 탓에 영국·프랑스와 달리 종교색채가 없던 네덜란드는 혜택을 누렸다. 1700년경부터 나가사키에 진을 치며 독점적으로 무역을 했는데 이때 일본에 처음 커피가 전해졌다.

네덜란드는 당시 식민지배를 하던 인도네시아 자바의 커피 밭에서 생두를 배에 실어 암스테르담으로 실어 날랐다. 선원들이 오랜 항해 기간 흔들리는 범선에서 안전하게 커피를 마실 묘안을 짜낸 것이 더치커피라는 게 일본인들 주장이다. 네덜란드 선원들이 큰 통에 커피가루를 담고 찬물을 부어 하루 동안 우려낸 뒤 마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네덜란드 사람들은 “더치커피를 알지 못한다”며 고개를 젓는다.

더치커피는 정확하게 말하면, 일본식 워터드립(Japanese cool water drip)이다. 찬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리기 때문에 점적(點滴)식 또는 적하(滴下)식이라고 한다. 이 방식을 미국인들은 드립핑(Dripping)이라고 칭했다. 더치커피를 유행시킨 일본커피체인점 ‘홀리스 카페(Holly’s Cafe)’가 교토를 거점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교토커피(Kyoto coffee)’라고도 했다.

더치커피가 일본에서 발명돼 세계로 퍼져 ‘콜드브루’라는 새로운 영역을 구축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런 관점은 재고의 여지가 많다. 교토의 홀리스 카페가 문을 연 시점은 1979년으로 불과 37년 전이다.

코넬대에서 화학을 전공한 토드 심슨(Todd Simpson)이 과테말라에 여행을 갔다가 힌트를 얻어 콜드브루를 개발한 건 1962년이다. 그는 과테말라의 한 마을에서 농축된 커피추출액에 뜨거운 물을 부어 즉석에서 간편하게 커피를 대접하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휴스턴 집으로 돌아온 그는 찬물에 커피가루를 3~4시간 담가두는 침적(浸積)식으로 커피농축액을 만들어 필요할 때마다 물을 부어 마셨다.

커피 추출에 쓰는 물이 차가우면 뜨거울 때보다 향미를 더 많이 액체에 담아둘 수 있다. 동시에 위장을 괴롭히는 오일(Oils)과 지방산(Fatty acids)이 우러나는 양이 줄어든다. 이 덕분에 토디의 커피는 향미가 부드럽고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커피로 환영을 받으며 널리 퍼졌고 ‘토디 콜드브루’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최근 대기업까지 뛰어들어 콜드브루 커피를 대량 시판하고 있다. 더치커피가 종종 대장균 오염소동을 빚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지자 미국식으로 이름을 바꿔 마케팅하고 있는 것이다. 콜드브루 커피와 더치커피는 기원과 추출방식이 엄연하게 다르면서도, ‘찬물추출 커피’ 또는 ‘냉침(冷浸) 커피’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 역사는 인스턴트커피의 개발(1901년)보다 반세기가 늦지만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콜드브루 커피에 질소를 넣어 흑맥주처럼 마시는 ‘나이트로 커피(Nitro coffee)’를 봐도 그렇다. 시장이 확고해지는 제품일수록 기원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는 더욱 쏠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