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의 커피인문학 ‘플랫화이트’①] 실패가 빚어낸 소중한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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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박영순 <아시아엔> ‘커피’ 전문기자] 영국 속담에 “넘어짐으로써 안전하게 걷는 법을 배운다(By falling, we learn to go safely).”는 말이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겠다. 그런데 카페의 메뉴들 가운데 플랫화이트(Flat white)의 탄생은 “넘어짐으로써 금덩이를 얻었다”에 비유할 만하겠다.

플랫화이트가 호주 혹은 뉴질랜드에서 만들어져 세계에 퍼지기 시작한 지 어느새 30년이 훌쩍 넘었다. 플랫은 ‘평평하다’, 화이트는 ‘하얀빛 우유’를 각각 의미한다. 에스프레소에 스팀으로 데운 우유를 섞어 만드는 방식은 카푸치노나 카페 라테를 꼭 닮았다. 이름을 따라 모양을 떠올려보면, 컵 위로 불룩하게 거품이 쌓인 카푸치노가 아니라 윗면이 평편한 카페 라테가 그려진다.

플랫화이트의 기원과 관련해 뉴질랜드 웰링턴에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바리스타가 카푸치노를 만들려고 했는데 우유거품이 풍성하게 만들어지지 않아 손님에게 내놓지 못했다. 버리기가 아까워 자신이 마셨더니 에스프레소의 맛이 강하게 드러나고 질감도 매력적이었다. 그가 이 맛을 재현해 손님들에게 주었더니 반응이 더욱 좋았다고 한다. 한 마디로 실패한 카푸치노에서 플랫화이트가 탄생했다는 스토리이다.

우유거품이 평평하기는 카페 라테도 비슷한 데, 플랫화이트는 무엇이 다른 것일까? 두 메뉴를 두고 혼선이 빚어지기는 미국, 영국, 호주, 대만 등 외국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진짜 플랫화이트이냐”를 두고 진행된 글로벌 인터넷 투표에는 수 천 명이 몰리기도 했다.

플랫화이트를 카페 라테나 마키아토, 카푸치노와 구분 짓는 데는 대체로 네 가지의 키워드가 꼽힌다. 다시 말해 ‘플랫화이트의 4대 특징’이다.

첫째, ‘벨베티(Velvety)’다. 에스프레소에 우유가 섞인 질감이 벨벳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농밀한 느낌을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곱게 우유 거품을 내고(Foaming), 데우는(Steaming) 바리스타의 능숙한 기술이 필요하다. 섭씨 100도를 훌쩍 넘으면서, 더욱이 강렬하게 분출되는 스팀으로 미세하게 우유에 공기를 주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찬 우유가 섭씨 37도를 넘기 전에 공기주입을 완료해야 하고, 그 이상의 온도부터는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면서 섭씨 65도~70도까지 우유를 데워야 한다. 우유가 섭씨 37도를 넘어선 상태에서 공기가 주입되면 거품이 거칠어지고, 섭씨 70도 이상이 되도록 우유를 데우면 유지방과 유단백질의 변성으로 인해 우유 비릿내 등 불쾌한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벨베티한 우유거품은 라테 아트를 하기에 좋아 흔히 에스프레소 윗면에 모양을 만들긴 하지만, 플랫화이트에 반드시 라테 아트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스타벅스의 플랫화이트이다. 스타벅스의 플랫화이트는 윗면만 보면 카페 마키아토처럼 작은 동그란 모양만 있다.

둘째, ‘마이크로폼(Microfoam)’이다. 우유거품이 벨베티한 느낌을 갖기 위해선 우유가 섭씨 37도가 되기 전에 섬세하게 공기를 주입함으로써 미세한 마이크로 폼이 만들어지도록 해야 한다. 우유와 우유를 담는 피처를 냉장고에 보관해 섭씨 4도 안팎이 되도록 낮게 유지해도, 뜨거운 스팀으로 공기를 주입할 때 우유가 섭씨 37도가 되는 데에는 5~7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이다. 우유거품이 마이크로 폼을 이루지 못하면 에스프레소와 잘 섞이지 않고 위로 뜨면서 카푸치노처럼 컵 위로 불룩 솟아오르게 된다. 이렇게 해선 윗면이 평편한 플랫화이트라고 할 수 없다. 플랫화이트의 거품은 매우 미세하기 만들어 액체 위로 뜨지 않고, 에스프레소와 우유가 섞여 이루게 되는 용액 속에 고르게 퍼져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커피와 우유가 입안에서 하모니를 이룬다. 동시에 두 가지의 맛이 느껴져야 한다. 우유거품, 우유용액인 듯한 느낌, 에스프레소의 정체성 등이 각각 따로 감지된다면 마치 홍시주스처럼 입에 감기는 듯한 플랫화이트의 매력적인 질감을 감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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