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의 커피인문학] 영화 ‘물랭루즈’ 속 명대사···”커피는 아침에, 키스는 밤에”
[아시아엔=박영순 <아시아엔> 커피전문기자] 잔에 담겨 덩그러니 탁자 위에 놓인 커피는 단지 사물이다. 그러나 목을 넘어 오는 순간, 그것은 나를 지배하는 정서가 된다. 눈을 지그시 감게 만드는 그윽함, 따스한 온기, 때론 짜릿한 전율···. 커피의 향미는 내가 실존하고 있음을 일깨워 주는 구체적인 느낌이다. 마음에 떠오르는 감성이 말을 통해 시(詩)로 피어나는 것과 같다.
정서, 전율, 감성, 향미, 관능, 그리고 감정의 순화. 커피는 시를 닮았다.
커피를 시로 읊은 최초의 작품은 이슬람 마울라위야 종단을 창시한 수피(Sufi)이자 시인인 잘랄 앗 딘 알 루미(1207~1273)의 ‘입술 없는 꽃 17.’이다.
“깨어나라, 아침이므로/ 아침의 포도주를 마시고 취할 시간이라/ 팔을 벌리라 /영접할 아름다운 이가 왔도다.”(하략)
‘아침의 포도주’는 커피를 상징한다. 커피의 어원은 아랍어로 ‘까흐와’인데, 포도주를 의미하기도 한다. 시인은 커피를 통해 신(God)을 만나는 기쁨을 노래했다. ‘영접할 아름다운 이’는 자아소멸을 통해 만나게 될 신을 뜻한다.
호주 출신의 세계적 커피로스터 인스토레이터(Instaurator)가 저서 <에스프레소 퀘스트>(2008년)의 서문에 적은 ‘한 잔의 에스프레소에서 신을 만나는 아름다운 경험(The wonderful experience of seeing God in an espresso cup.)’은 차라리 한 편의 시다.
커피의 기원에 관한 기록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커피의 합법성 논쟁과 관련해 무결함을 주장함>(1587년)을 쓴 압달 카디르도 커피가 주는 관능적 행복을 신의 경지에서 찾고자 했다. 그는 책의 말미에 당대 최고의 아랍 시인들이 쓴 시 가운데 2편을 골라 실었다.
“오, 커피!/ 모든 번뇌를 잊게 하는 그대는/ 학자들에게는 갈망의 대상./ 신의 벗이 마시는 음료, 지혜를 좇는 자들에게 건강을 선사하는 음료”-커피찬가(In Praise of Coffee)
“커피는 신의 아이들의 음료요, 건강의 원천이라네. 커피는 개울이 되어 우리의 슬픔을 씻어 보내고, 또 어떤 때는 불이 되어 우리의 근심을 태워 없앤다네.”-커피와 벗하기(Coffee Companionship)
커피의 효능에 대한 놀라움에서 벗어나 향미가 선사하는 관능미(Voluptuous beauty)를 노래한 시들 중 수작으로, 커피연구가인 윌리엄 우커스는 미국의 프랜시스 살터스가 지은 ‘관능적 열매’를 꼽는다.
“관능적 열매! 당신과 견줄 만한 신성한 음료를 우리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중략)/ 요염한 꿈을 꾸느라 창백해진 금발머리 술탄의 발치에 있는 당신을 본다네!”
커피와 ‘연애’를 연결하는 시도는 1920년대 커피를 사랑한 뉴요커들을 겨냥한 뮤지컬에서도 찾을 수 있다. 뮤지컬 <홀드 에브리싱>(Hold Everything) 주제곡인 ‘당신은 내 커피 속 크림(You’re the cream in my coffee)’은 사랑을 구하는 간절함을 커피에 대한 깊은 애정에 비유한다. 1934년 개봉한 영화 <물랭루즈>에 삽입된 ‘커피는 아침에, 키스는 밤에(Coffee in the morning and Kissesin the night.)’는 커피를 로맨틱한 사랑의 상징으로 만들어 놨다.
달콤함 보다 쓴맛의 이미지가 강한 커피가 사랑을 은유하는 것은 ‘사랑이란 기쁨보다는 고독이요, 고통이라는 속성’을 파고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