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코나커피①] 생산량 전세계 1/20만 불과···품질은 불루마운틴과 ‘세계 2대커피’

크고 선명한 색을 자랑하는 하와이 코나 최고등급(엑스트라팬시) 커피 생두.

[아시아엔=박영순 <아시아엔> 커피전문기자] “태평양에서 커피가 난다”고 하면 깜짝 놀라겠지만, 하와이 커피를 두고 하는 말이다. 미국 땅에서 커피가 나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미국은 커피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이다. 2016년 한해 소비량이 15억2046톤으로 전 세계 소비량의 16.3%를 차지한 것으로 국제커피기구(ICO)는 집계했다. 한국보다 13배 많은 양이다. 인구수를 고려해도 한국보다 마시는 양이 압도적이다. 미국의 인구수는 2016년 7월 현재 3억2399만명으로 한국(5171만명)의 6.2배인데, 단순 비교를 해보면 미국인 한 명이 우리 국민 한명보다 커피를 2배 이상 마시는 셈이다.

미국 본토와 한반도는 커피를 재배할 수 있는 커피벨트의 북쪽 한계선인 북위 24도 위에 있기 때문에 커피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물론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는 것은 예외다. 비닐하우스에서 수확하는 커피는 양이 적기 때문에 ‘생두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 그러나 하와이에서는 커피가 재배된다.

특히 하와이 코나 지역에서 생산되는 커피는 품질이 우수해 자메이카 블루마운틴과 더불어 ‘세계 2대 커피’로 손꼽힌다. 코나에서 생산되는 커피는 연평균 500톤이다. 전 세계 커피생산량(2016년 90억9720만톤)의 0.000005%, 즉 20만분의 1을 차지한다. 하지만 존재감은 무시할 수 없다. ‘작지만 큰 커피생산지’ 하와이 코나 커피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봤다.

하와이 탄생 신화 ‘하와일로아’

하와이는 지리적으로나 인종적으로 폴리네시아(Polynesia)에 가깝다. 수천 개 섬들로 이루어진 폴리네시아는 육지 총 면적이 약 2만6000㎢로 제주도(1825㎢)의 1.5배에 불과하지만, 해역은 태평양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흔히 하와이 남단, 뉴질랜드 북단, 이스터 섬을 잇는 삼각지대를 일컫는다. 폴리네시아인들은 광대한 해역에 퍼져 살지만 남서단의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과 최북단의 하와이 원주민인 카나카족의 언어가 서로 통한다. 폴리네시아인들은 현저한 동질성을 보인다.

폴리네시아인이 넓게 퍼질 수 있던 것은 뛰어난 항해술과 카누 덕분인 것으로 관측된다. 기원전 150년경부터 폴리네시아에는 인류가 거주한 증거가 있다. 이스턴 섬에는 4세기, 하와이는 9세기, 뉴질랜드는 14세기부터 인류가 살았던 흔적이 방사성탄소에 의한 연대측정을 통해 확인됐다. 역사가들은 기원 후 300~400년 하와이 제도에 폴리네이사인이 정착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1700년 역사에서 하와이는 하와일로아(Hawaiiloa)라는 영웅을 주인공으로 하는 탄생신화를 갖고 있다.

태평양의 이름 모를 섬에서 태어난 하와일로아는 거친 바다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카누를 만들어 항해를 하다가 일련의 섬들을 발견한다. 섬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하와일로아는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8명의 항해전문가를 대동하고 원정을 떠나 자신이 발견했던 섬에 정착한다. 후손들은 그의 이름을 따 이 섬들을 ‘하와이’라고 불렀다. 주요 섬들에는 하와일로아의 세 아들인 카우아이(Kaua’i), 마우이(Maui), 오아후(O’ahu)의 이름이 붙었다.

하와이 코나커피농장

영국 제임스 쿡, 하와이를 발견하다

하와이 제도는 1778년 스코틀랜드계 영국인 탐험가인 제임스 쿡이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최북단에 있는 카우아이 섬에 상륙하면서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영국은 당시 세계적 무역상품인 설탕을 조달하기 위해 하와이에 사탕수수 농장을 추진하고 원주민을 효율적으로 동원하기 위해 하와이왕국 수립을 지원한다. 카메하메하 1세는 1795년 하와이왕국을 선포하는데, 수도를 빅아일랜드 북쪽에 접한 마우이 섬의 라하이나(Lahaina)로 정한다.

카메하메하는 하와이어로 ‘고독한 자’를 뜻한다. 그는 당시 하와이 섬에서 가장 세력이 큰 부족의 족장이었다. 영국은 카메하메하 족장에게 소총과 대포 등 신식무기를 제공하면서 통일전쟁을 치르게 한다. 그는 1810년 카우아이 섬의 족장한테 항복을 받아내면서 하와이제도를 통일하고 스스로 대왕 자리에 오른다.

하와이왕국은 7대 국왕과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의 시대를 거치면서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 미국의 각축장이 된다. 그러나 1840년대 대영제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프랑스의 루이 필립 국왕은 하와이왕국의 독립과 주권을 보장하겠다고 선언한다.

미국, 하와이를 거머쥐다

하와이는 사탕수수 판매를 통해 큰 돈을 벌지만, 7대 국왕인 칼라카우아가 영국 빅토리아 궁전을 모방한 이올라니 궁전을 짓느라 재정을 상당 부분 날려버린다. 이 시기가 1880년대인데, 미국 자본가들은 이를 비집고 왕국의 자산을 하나둘씩 챙겨 나간다. 미국은 1948년 골드러시(Gold rush)가 시작돼 거대 자본가가 등장하고 서부 해안에 도시가 생기면서 본격적인 태평양시대가 열렸다.

하와이 왕국의 자산을 대거 확보한 미국은 1887년 칼리카우아 국왕에게 의회 권한을 강화하는 개헌안을 내민다. 당시 하와이 의회는 미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하와이를 병합하려는 속내가 마침내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실 미국은 하와이를 편입하기 전인 1887년 이미 진주만에 해군기지를 설치했다.

칼리카우아 국왕이 1891년 지병으로 사망하자 여동생인 릴리우오칼라니가 국왕이 된다. 하와이 역사에서 유일한 여왕이자 최후의 국왕이다. 여왕은 오빠 시절에 미국과 맺은 불평등조약을 무효화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이미 기운은 미국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권력을 강화하려는 여왕에 대항해 미국의 정치세력은 1893년 민병대를 동원, 여왕을 감금하고 임시정부를 구성하는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때 하와이 원주민들이 무장 봉기하지만 3일만에 제압된다. 하와이왕국은 영토를 통일한 지 83년, 건국된 지 103년만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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