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코나커피②] ‘사람’ 뜻하는 폴리네시아어 ‘카나카’서 유래···Dole 상표와 역사 같이해
밥 돌 상원의원 조상들이 독점한 ‘Dole’ 상표
[아시아엔=박영순 <아시아엔> 커피전문기자] 미국 자본가 세력은 “왕제 타도를 위한 혁명”이라고 주장하며, 호놀룰루에서 태어난 미국인 선교사의 아들이자 법률가인 샌퍼드 돌(Sanford Dole)을 1894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하와이공화국을 출범시킨다. 그는 대통령이 된 뒤 4년만인 1898년 하와이를 미국령으로 편입시킨다. 하와이가 미국의 50번째 주가 된 것은 이로부터 60여년이 지난 1959년이다. 샌퍼드 돌 가문은 ‘돌(Dole)’ 상표를 만들어 과일, 채소, 해운업을 독점하다시피 하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고 대대로 상원의원을 배출한다. 공화당의 밥 돌 상원의원이 그의 후손이다.
하와이왕국 전성기 연 사탕수수
하와이가 18세기말 서구에 알려진 뒤 처음엔 무역선이나 고래잡이 어선들의 기항지로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하와이 섬에서 사탕수수가 야생으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알려지면서 운명이 바뀐다. 사탕수수는 8000년전쯤 남태평양의 뉴기니에서 경작되기 시작해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거쳐 인도에 상륙했다. 인도인들이 기원전 4세기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제조하는 기술을 깨우쳤다. 기원전 327년에는 알렉산더가 인도를 침략, 사탕수수를 보고 “벌 없이 꿀을 만드는 갈대’라고 탄복했다. 500년경쯤 페르시아에서도 사탕수수를 재배했다. 이곳을 점령했던 마호메트 군대가 이집트로 재배농법을 전했고, 이집트를 통해 755년 지중해를 건너 스페인으로 퍼진다.
설탕은 11~13세기 십자군전쟁을 통해 유럽 전역에 확산되며,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는 1493년 두번째 항해에서 카리브해의 아이티섬에 사탕수수를 전한다. 이후 페루, 브라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 남미의 거대한 땅에서 사탕수수가 재배됐다.
1600년 무렵에 설탕은 엄청난 돈벌이로 부상해 세계적으로 생산량이 늘었지만, 여전히 유럽에서는 사치품으로 분류될 만큼 귀했다. 이런 마당에 18세기말부터 거대한 미국시장이 부상했으니, 하와이왕국으로서도 사탕수수 생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하와이에 사탕수수 농장이 최초로 들어선 것은 하와이왕국의 전성기로 꼽히는 카메하메하 3세 통치하인 1837년이었다.
사탕수수보다 앞서 재배된 하와이 커피
흔히 “하와이 커피는 미국인들이 브라질에서 옮겨 심은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잘못된 견해다. 하와이 커피의 유래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는데, 분명한 것은 그 시기가 하와이 왕국 때라는 사실이다. 가장 앞선 것은 하와이 왕국의 초대 국왕인 카메하메하 시절, 국왕의 고문으로 있던 스페인 의사 돈 프란시스코 마린(Don Francisco Marin)이 1813년 오아후에 커피 묘목을 심었다는 기록이다.
이어 10년 후인 1825년 카메하메하 2세 국왕 부부가 영국 방문 중에 홍역으로 사망하는데, 시신을 운구해오던 오아후 섬의 행정관 보키(Boki)가 중간 기착지인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커피 묘목을 구해 오아후 섬에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보키와 영국에서부터 동행한 원예학자 존 윌킨슨(John Wilkinson)이 커피의 가치를 알고 묘목을 구해 보키에게 재배를 권한 것으로 전해진다.
코나커피의 기원은 오아후 섬에서 자란 커피나무에서 비롯된다. 미국 코네티컷 출신의 선교사 사무엘 러글스(Samuel Ruggles)가 1828년 오아후의 커피나무 가지를 여러 개 꺾어다가 코나에서 성공적으로 키워냈다. 커피는 씨앗뿐 아니라 꺾꽂이를 통해서도 번식할 수 있다.
품종은 에티오피아의 고산지대에서 유래한 것인데, 하와이 사람들은 ‘카나카 코페(Kanaka Koppe)’라고 불렀다. 카나카는 폴리네시아어로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하와이 커피를 뜻한다. 지금도 코나에서는 티피카(Typica) 원종과 함께 이 품종이 자라고 있다. 1830년대에는 하와이 제도의 최북단인 카우아이 섬에서도 커피재배가 이루어져 전체 섬에서 커피를 생산하게 된다. 코나에는 또 과테말라에서 들어온 품종이 있다. 이 품종은 하와이 왕국의 마지막 해인 1893년 독일 출신으로 왕국의 입법관을 지낸 헤르마나 와이드만(Hermanna Widemann)이 들여온 것으로 ‘코나 티피카(Typica)’로 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