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사진기자 접고 CIA향미전문가 ‘인생 2모작’

임영주씨 “향미공부는 성품까지 바꾸는 자기명상적 힘 발휘”

[아시아엔=글 박영순 <아시아엔> 커피전문기자·사진 김지원 객원기자] “환갑에 향미공부를 한다는 게 부질없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안했던 것도 아니지요. 향미를 따지며 음식을 드셔보세요. 지나온 삶이 더욱 풍성해지는 마법이 펼쳐집니다.”

세계 최고권위의 요리대학인 미국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서 향미전문가 교육과정을 마치고 플레이버마스터자격증(FMC, Flavor Master Certificate))까지 따낸 임영주(60·사진)씨는 “향미를 공부하면서 웃는 일이 잦아졌다”고 했다.

흔히 환갑이 되면 미각과 후각이 쇠퇴했다며 지레 향미공부에는 손사래를 치게 되는데, 임씨는 달랐다.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하면서 세계 곳곳의 음식문화를 접하는 기회를 가졌지요. 그때는 취재 때문에 음식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향미를 탐구하면서 새까맣게 잊고 살았던 추억들이 향기를 맡는 가운데 추억들이 되살아나는 겁니다.”

임씨는 미각과 후각이 떠올려주는 기억들로 인해 너무나 행복하다고 했다. 어릴 적 자란 전남 담양의 아름다운 산천을 떠올리게 하고, 특히 어머니가 자주 만들어 주시던 들깻국 나물무침과 토란국의 뉘앙스를 만났을 땐 눈물이 흘러내리더라고 했다.

“맛과 기억은 모두 뇌가 담당하잖아요. 어머니가 해주시던 죽순요리나 담양장날 먹었던 산해진미들을 다시 찾을 수 없어 그리움만 쌓였는데, 향미 공부를 하면서 문득문득 음식들 속에서 그 시절의 감각이 느껴지고 관련된 기억들도 또렷해지더라고요.”

임씨는 1984년 중앙일보 기자를 시작으로 민영통신사 사진영상국장(2005년)을 거쳐 지난 1월 모바일뉴스 <빅플로그> 상무를 끝으로 32년 기자생활을 접고 자연인으로 돌아왔다. 오지탐험 전문기자로 히말라야 트래킹, 북극횡단, 안나프루나-로체 등정, 타클라마칸 사막 MTB 횡단(650km) 등 거친 일을 마다하지 않던 그를 아는 사람들은 향미에 빠진 모습을 보고 갸우뚱거린다.

그는 영산강 상류, 추월산 자락에서 청정산야를 누비며 산해진미를 만끽하던 것이 자연스레 자신에게 독특한 후각과 미각을 선사했다고 믿는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영주가 택한 집은 틀림없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입맛이 ‘장금’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직장시절에도 옆 부서 사람들까지 찾아와 회식장소를 그에게 묻곤 했단다.

임씨는 환갑에 다가가면서 특기를 살리기로 마음먹고, 2~3년 전부터 남모르게 준비를 했다. 한식과 양식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커피는 영국의 바리스타 자격증(SCAE)을 땄다. 제빵은 고대부터 내려온 발효종법으로 만드는 천연발효종을 마스터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되자 그는 세계 최고과정에 도전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미국CIA는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 최고 요리대학이지요. 환갑이 되면서 사실 제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압박이 심했어요. 그러던 중 향미 분야 최고과정을 경험하고 싶다는 욕구가 치솟았습니다.”

임씨는 6개월여 집중적인 이론과 실습탐구를 거쳐 지난 4월 미국 뉴욕의 CIA본교로 건너가 향미전문가 교육과정을 거치며 학점을 받고, 얼마 전 자격증시험에도 합격했다. 그는 이제 세계적으로 몇 명 되지 않는 CIA 향미전문가(FMC)다.

임씨는 “플레이버마스터로서 향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CIA에 도전하라”고 적극 권한다. 그는 “FMC 과정은 3일간 숙식을 하면서 진행되는데 100여종의 식음료를 맛보면서 향미를 평가하고 묘사한다”며 “맛보지 않고 향미를 언급하는 것은 사람을 만나보지도 않고 이렇다 저렇다 말꼬리만 잡는 것과 같다”고 했다. 임씨는 “향미를 올바로 아는 것은 성품까지 온순하게 만드는 자기명상적인 힘까지 발휘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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