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의 커피인문학] 초겨울, 따끈하고 진한 핫커피 한잔?

<사진=CCA>

온도 따라 달라지는 커피 맛의 마술

[아시아엔=박영순 <아시아엔> 커피전문기자] 겨울엔 뜨거운 컵에 손을 녹이면서 솜사탕처럼 피어나는 김을 호호 불며 마시는 핫커피 (Hot coffee)가 제 맛이다. 체온보다 훨씬 높은 커피가 이 처럼 사랑받는 것은 비단 추운 날씨 때문만이 아니다. 분명 온도는 맛에 영향을 끼친다.

‘온도와 커피 향미의 함수’를 푸는 것은 바리스타에겐 영원한 과제다. 흔히 온도와 향미라고 하면, 커피추출 단계에서 몇 도의 물로 커피가루에 숨어있는 향미성분을 추출하느냐를 두고 이런 저런 공방을 벌인다. 대체로 “물의 온도가 섭씨 95도에 달하면 쓴맛이 많이 추출되고, 80도 안팎이면 쓴맛은 줄어들어 산미와 단맛이 부각되지만 커피성분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밍밍하게 되기 쉽다”는 식의 이야기다.

그러나 커피를 사서 즐기는 애호가로서는 이런 탐구적인 영역보다는 자신에게 제공되는 한 잔의 커피가 몇 도이며, 온도에 따라 맛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 지를 이해하는 것이 더 실속 있다.

인류의 20~30%가 음식을 먹지 않고 혀를 따뜻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맛을 느낄 수 있는 ‘서멀 테이스터(Thermal taster)’인 것으로 보고됐다. 커피테이스팅과 관련해 “커피 온도가 낮아지면서 단맛이 줄어드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강한 것처럼 느낀다”는 게 정설처럼 돼 있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연구결과들이 보고되고 있어 온도에 따른 맛의 변화를 속단하긴 이르다.

캐나다 브로크대학교(Brock University) 연구진의 테이스팅 실험에선 신맛과 떫은맛은 음식이 따뜻할수록, 쓴맛은 차가울수록 강렬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맛은 온도와 별 상관이 없었으며, 다만 음식이 따뜻할수록 단맛이 최대 강도에 도달하는 시간이 짧아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온도와 맛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통해 커피의 향미를 즐기는 몇 가지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건강을 위해선 체온과 비슷한 온도(36.5±0.5℃)로 섭취하라는 말이 있지만, 향미를 즐기기 위해선 약간의 모험(?)이 필요하다. 커피는 65~70℃, 녹차 60℃, 맥주 7~8℃, 레드와인 18℃, 샴페인 7℃, 아이스커피 6℃, 아이스크림 -8~-6℃의 온도로 즐기는 것이 좋다.

70℃ 이상이면 혀를 데는 정도이고 5℃ 밑으로 떨어지면 맛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커피에게 5℃이하, 70℃이상은 이른바 ‘데인저 존(Danger Zone)’이다. 향미를 위해서라면 피해야 하는 구간이다. 가장 흔한 아메리카노의 경우, 92~95℃인 물로 9기압(bar)의 압력을 가해 추출한 25ml 에스프레소에 88~90℃인 물 100ml를 부어 만든 것이 정석이다. 이렇게 되면 한 잔에 담기는 순간 아메리카노의 온도는 90℃를 넘는다.

그래서 친절한 바리스타는 “바로 드실 거면 얼음을 몇 조각 넣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 70℃ 이하로 내려 미각과 후각이 잘 어우러지는 향미를 선사하기 위해서다. 관능적인 측면에서 아메리카노가 90℃를 넘다드는 순간은 향기를 즐기기에 적합하다. 커피가 지닌 긍정적인 면모들이 하늘하늘 날아가는 순간이다. 이 순간의 향미를 놓치고 커피가 지루하다고 투정할 순 없다.

뜨겁게 제공하는 커피는 향미를 최대한 붙잡아 두기위한 바리스타의 혼신적인 투쟁이다. ‘온도와 맛의 법칙’에 따라 높은 온도에서는 단향이 두드러지고 쓴 느낌은 가려진다. 식으면서 드러나는 향미의 그늘진 구석은 커피의 품질을 평가하는 좋은 잣대인데, 평가를 위한 게 아니라면 굳이 식은 커피를 즐길 이유는 없다.

많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전성기일 때가 가장 유쾌하듯, 아메리카노의 향기도 뜨거울 때가 가장 멋지다. 아메리카노 향미의 절정은 메뉴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한 잔의 뜨거운 커피를 받으면 당장 입을 대기보다 코로 향기를, 눈으로 빛깔을 음미하자. 향기의 요정들이 공중으로 사라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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