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의 커피인문학] ‘감자맛 커피’가 르완다를 울리고 있다

감자맛 결함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안테스티아(Antestia Bug)가 커피나무 가지에 있는 모습

[아시아엔=박영순 <아시아엔> 커피전문기자] 커피의 향미를 표현하는 단어들 가운데 ‘감자맛(Potato Taste)’은 너무나 안타까운 사연을 담고 있다.

커피에서 ‘감자향미(Potato Flavor)’는 굽거나 삶은 감자에서 나는 은은한 향으로서 다른 향들과 어우러지면서 좋은 느낌을 자아내는 매력적인 요소다. 그러나 ‘포테이토 테이스트’라고 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것은 ‘포테이토 디펙트(Potato Defect)’와 같은 말로, 르완다(Rwanda)에서 생산되는 커피가 대체로 갖는 고질적인 향미적 결점을 꼬집는 용어가 됐다.

부정적인 의미의 감자맛이란, 잘 추출된 한 잔의 커피에서 생감자의 아린 맛과 자극적인 향이 나는 결점이다. 생감자를 썰거나 껍질을 씹었을 때 느껴지는 거친 감각이자 입을 마르게 하는 떫은 뉘앙스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생두 상태에서는 전혀 감지되지 않는 향미적 결점’(Off flavor that tastes and smells like raw potatoes and is not sensed in green coffee)이며, 한 알만 있어도 컵 전체를 망치는 파괴력을 품고 있는 무시무시한 존재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감자맛 결함(Potato Taste Defect, PTD)이 한 잔에 담기는 커피에 썩은 감자를 떠오르게 하는 악취와 향미(PTD in which a few coffee beans impart an odor and flavor reminiscent of rotten potatoes)를 부여한다”고 지적한다.

커피테이스터가 커피의 품질을 평가하기 위해 테이스팅을 하고 있는 모습
커피테이스터가 커피의 품질을 평가하기 위해 테이스팅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커피비평가협회(CCA)>

르완다 커피를 테이스팅할 때 산미와 단맛이 잘 어우러지고 적절한 쓴맛과 부드러운 바디감이 기분을 좋게 만들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려는 순간 생감자 또는 말린 인삼을 질근 씹었을 때 느껴지는 아린 맛이 스치면서 주춤하는 경우가 적잖다. 포테이토 디펙트가 부리는 심술 때문이다.

이처럼 치명적인 결점이 1994년 대학살을 겪고 난 뒤 전 국민이 커피를 생산하며 희망의 불을 지핀 르완다에 천형(天刑)처럼 내려졌다는 게 더욱 안타깝다. 우리나라의 경상도만한 르완다는 남위 2도로 적도에 가깝다. 하지만 전 국토의 해발고도가 1500m 이상이어서 연평균기온이 섭씨 19도, 연평균강수량이 1270mm정도로 아라비카 품종을 재배하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미국이 2000년도부터 ‘PEARL프로젝트’라는 지원프로그램을 통해 농가마다 커피나무 70그루를 나눠주고 재배토록 했다. 품종은 대부분 버번(Bourbon)으로 40여만 농장에서 매년 30~40만bags(1bag 60kg)을 생산하고 있다.

안테스티아를 뒤집어 놓은모습
안테스티아를 뒤집어 놓은모습<사진=위키피디아>

르완다는 2008년부터 세계적인 스페셜티커피 바람에 부응하기 위해 아프리카국가로는 처음으로 COE(Cup of Excellence)를 유치하고 품질이 좋은 커피를 생산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이는 21세기에 들면서 커피의 향미를 따지며 소비하려는 이른바 ‘제3의 물결’이 일면서 커피재배지에서 나타난 공통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르완다의 이런 노력이 되레 족쇄가 될 줄이야! 전문적인 향미 평가를 받지 않고 대량 판매할 때 없었던 감자맛 결점이 커피테이스터들의 전문적인 평가를 받게 되면서 감지되기 시작한 것이다. 품질을 높이기 위해 디펙트빈을 골라내는 등 노력을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르완다 커피에 미세하게 섞여 있던 포테이토 디펙트는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게 무슨 역설이란 말인가? 세계 각지의 전문가들이 르완다 산지로 달려가 원인규명에 매달렸지만, 아직 명쾌한 답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르완다가 일시에 전국적으로 커피나무를 키우는 바람에 토양의 영양분이 소진된 데 따른 현상이라는 의견이 제기돼 땅을 ‘객토(客土)’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감자맛 결함의 원인은 안테스티아(Antestia Bug)라는 벌레로 모아지고 있다. 방귀벌레(Stink bugs)라고도 불리는 이 곤충은 몸이 납작하며 거의 여섯모꼴인데, 몸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노린재’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 벌레가 감자맛을 내게 하는 원인은 거듭된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 가설 수준이다.

가설은 이렇다.

첫째, 커피열매가 안테스티아의 공격을 받으면 씨앗까지 손상을 입게 된다.

둘째, 손상된 곳으로 미세한 박테리아가 침입해 기생한다.

셋째, 박테리아가 기생하면서 분비하는 물질이 생두에 축적돼 감자맛 결함을 내게 된다.

감자맛 결함을 내는 생두를 분석해보니, 실제 메톡시 피라진(Methoxy Pyrazine)이 검출됐다. 이 물질은 생감자에 존재하는 성분으로서, 미묘한 흙냄새의 원인물질이기도 하다. 감자가 자랄 때 토양박테리아에 의해 생성돼 감자에 흡수되는 성분으로 알려졌는데, 생감자를 썰 때 향미가 두드러진다.

안테스티아로 인한 감자맛 결함은 외견상 생두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추출해 맛을 봐야만 비로소 결함이 있는 줄 알 수 있기 때문에 재배자로서는 생두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된다.

감자맛 결함으로 인해 대학살의 악몽을 딛고 재기의 꿈을 키워준 커피가 르완다 국민들에게 양날의 칼이 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안타까움을 보다 못해 일각에서는 감자맛 결함을 르완다 커피의 향미적 특징으로 받아들이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에게는 기분을 좋게 만들지 않는 정도인 ‘감자맛 향미’가 르완다를 울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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