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의 커피인문학] 국내 최초 커피테이스터···미식은 기억보다 강하다

[아시아엔=박영순 ‘커피’ 전문기자, 경민대 호텔외식조리과 겸임교수] 미식(美食)을 여유 있는 사람들의 한가한 문화(?) 쯤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먹고 살기조차 숨 가쁜 세상에 사치스럽게 맛을 따져!”라는 말도 적잖게 들려나온다. 과연 맛을 가려 즐기는 것이 ‘호사스러운 일’인가?

인류가 이제껏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맛을 따져 가려먹는 능력을 지닌 덕분이다. 아니 맛을 아는 인류만이 그 기능을 DNA로 계승하며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하겠다.

향기로 커피의 품질을 평가하고 있는 국내 1호 커피테이스터 박영순 경민대학교 호텔외식과 겸임교수
향기로 커피의 품질을 평가하고 있는 국내 1호 커피테이스터 박영순 경민대학교 호텔외식과 겸임교수

30만년 전 한반도를 밟은 호모 사피엔스 중 타는 냄새를 구분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DNA를 지닌 부족은 진화과정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반면 그을린 냄새를 잘 구분하는 부족은 산불이 발생했을 때 타는 징조를 코로 감지하고 재빨리 대피하며 대를 이어갈 수 있었다.

쓴맛을 구별하는 능력도 자연에서는 종의 생존을 좌우한다. 치명적인 독소들은 거의 모두 쓴맛이 강하다. 이런 성분이 입에 들어왔을 때 위험으로 판단하고 뱉어낼 줄 아는 부족들이 생존 가능성이 높았다. 인류는 오랜 세월 속에 쓴맛을 빨리 감지하는 본능을 진화를 통해 계속 강화해 왔다. 음식이 부패했다는 신호로 작용하는 자극적인 신맛도 쓴맛과 같은 방식으로 종을 걸러내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단맛의 역할은 좀 달랐다. 에너지원인 포도당은 자연 속에서 단맛을 내는 음식물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들어있다. 따라서 같은 양의 음식을 먹더라도 단맛이 많은 것을 골라 섭취한 부족은 더욱 튼튼하게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짠맛은 똑같은 음식이 주어졌을 때 한 자리에서 많은 양을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관능적 요소이다. 소금 없이 설렁탕을 먹을 때 생각만큼 먹지 못하고 질리게 되는 경험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겠다.

맛이 대를 잇고 끊는 요인으로 작동하는 것은 식물에게도 마찬가지다. 열매는 왜 익기 전에는 쓰고 떫다가 잘 여문 후에야 달게 되는 것일까? 식물 입장에서, 열매는 종족보존의 수단이다. 열매는 내부에 품은 씨앗이 땅에 떨어져도 장차 생명체로 커나갈 수 있도록 영양분을 축적해 두어야 한다. 그런데 준비를 완수하기 전에, 그러니까 익기도 전에 땅에 떨어지면 씨앗의 배아는 생명을 키워내지 못하고 땅속에서 썩어 버리고 만다. 식물로서는 익기 전에는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의 신호로 열매에 쓰고 떫은 성분을 잔뜩 품어 둔다. 그러나 종족을 번식시킬 준비가 끝나면 “저를 건드려 땅에 떨어뜨려 주세요”라며 단맛으로 곤충과 동물을 유혹한다.

맛은 진화의 동력이며, 미식은 진화를 위한 처세(處世)이다. 바야흐로 문명이 발달해 음식을 먹을 때마다 생사를 걱정하는 상황에서 자유로워지고 번식의 효율을 높여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사라진 오늘날, 미식은 인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지금 이 순간도 미식은 인류를 진화시키는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커피테이스터(Coffee Taster) 자격증 과정을 가르치다보면 첫 시간에 항상 같은 상황을 맞게 된다. 수강생들이 “커피 맛을 잘 모르겠어요. 실제 커피에서 건포도, 아몬드, 파넬라 맛이 나서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맞나요?”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어떤 분은 “저는 맛을 잘 몰라요. 원래 맛에 둔감해요”라고 작정한 양 말한다.

커피의 향미를 평가하기 위한 커피테이스팅 테이블
커피의 향미를 평가하기 위한 커피테이스팅 테이블

그때마다 필자는 이렇게 답한다. “여러분은 진화의 승리자입니다. 조상께서 맛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을 유전자에 담아주셨지요. 커피에서 특정한 맛을 꼭 짚어내려 하지 말고, 음식을 먹었던 경험 중에서 느낌이 같은 맛이 감지되는지를 생각해보세요.”

커피의 맛을 알고 모르는 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과 같을 뿐이다. 필자에게 ‘미식이란, 내 안에 잠재된 맛에 대한 관능을 발견하는 자아개발의 과정’이다. 와인과 위스키, 사케, 차, 맥주, 커피의 향미를 공부하면서 가장 기뻤던 것은 맛을 구별하는 능력이 이미 내 안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특정한 맛이 불러일으키는 관능적 쾌감은 기억을 관장하는 뇌의 스위치를 켜는 신호인 것 같기도 하다. 같은 새우젓호박찌개라도 어머니가 끓여준 것이 더욱 사무치게 맛이 있는 까닭은 어머니에 대한 추억 때문이다. 새우젓호박찌개를 맛보는 순간 떠오르는 어머니에 대한 수많은 영상이 그리움이라는 감성을 건드리면서 눈물짓게 한다. 눈물짓게 만드는 맛보다 더 훌륭한 맛이 어디 있을까.

미식은 인류의 감성을 더욱 풍푸하게 만드는 쪽으로 진화하게 하는 동력으로도 작동하고 있지 않나 싶다. 잊고 살던 사람을 생각나게 하고, 그와 함께 한 시간과 공간을 영상으로 피어오르게 하는 것이야말로 미식의 위대한 힘이리라.

2008년 프랑스 보르도에 있는 와이너리 샤또 시트랑(Citran)을 찾아 오너인 앙투완 메흘로(Antoine MERLAUT)와 저녁식사를 하던 자리에서 “당신이 마셨던 와인 중에 제일 맛이 좋았던 게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지금도 그의 대답이 잔잔히 나의 가슴에 떨고 있다.

“니스의 해변, 별이 유난히 밝은 밤이었지요. 지금도 그 여인의 비취색 눈동자가 잊히지 않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아, 그때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와인이 샤또 라투르(Chateau Latour)였을 거예요.”

미식은 기억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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