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욱의 커피에세이] “공정무역 커피, 무조건 좋다 vs 맛과는 상관없다?”···자크 데리다 “정의 내리기 전 잠시만 멈춰보라”

[아시아엔=김정욱 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외래교수, 커피로스팅 2013년 세계챔피언] 대한민국은 가히 커피공화국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손에 든 커피는 이제 일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접하고 마시는 만큼 커피에 대해 알려고 하는 일반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일반상식과 전문지식 사이를 오가며 이젠 너도 나도 전문가인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한국의 커피 시장이 양적 팽창만큼 질적인 향상을 이루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대학에서 수업 중 중간 휴식시간에 학생들끼리 언쟁이 붙었다. 한 친구가 “공정무역 커피는 무조건 좋은 커피야”라고 했고, 다른 아이는 “커피의 품질과 상관없는 유통방식의 하나일뿐이야”라고 대꾸했다.

두 학생이 곁에서 듣고 있던 나를 바라보며 “공정무역 커피라면 맛이 좋다는 것이지요” “맛과는 상관없지요?”라고 따지듯 묻는다. 나는 “‘대안무역 커피’라는 표현이 좋을 것 같다. ‘좋은 커피’일 수는 있어도 그게 반드시 ‘맛있는 커피’라고 말할 순 없겠지”라고 답했다

그러자 또 다른 아이가 공격해온다. “스페셜티 커피는요. 그것도 좋은 거 아니에요?” 그 틈을 타고 또 다른 질문이 던져졌다. “시중에 있는 커피 중에 무슨 커피가 제일 맛있어요?” 라는 질문이다.

무엇인가를 알려줄 때 가장 두려운 것이 정의를 내리는 일이다. 논란이 있을 만한 주제를 두고 단정하듯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일부 전문가들을 보면 걱정스러운 마음을 떨칠 수 없다.

무언가 정의 내릴 때 주저하는 나의 버릇은 아마도 대학 때 가장 좋아했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영향일지 모른다. 그가 설파한 다양한 이론 중 하나가 ‘차연(差然, differance)’이라는 개념인데, 간략하게 말하면 “모든 규정과 정의(definition)를 언급할 때는 한번 쯤 유보하고 연기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말과 글, 이성과 광기, 남과 여, 선과 악, 빛과 어둠 등의 ‘이항대립 체계’에서는 전자의 것이 상위의 어떤 것을 차지하고, 뒤의 것은 부정적 이미지를 보이거나 앞의 것에 대한 부수적 이미지로 전락할 때가 많다. 심지어 앞의 것들에 우선권을 주고 뒤의 것들은 항상 밀려나가는 현상까지 보였다. 하지만 데리다는 이러한 ‘서열구도’가 폭력적이라고 언급하면서 둘 사이의 자리바꿈을 통해 ‘탈중심’, ‘탈구축’을 시도한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될 것이 둘 사이는 대립 관계가 아니라 언제든 위치가 바뀔 수 있는 상호 보충적 관계라는 점이다.

이게 커피랑 무슨 관계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커피업계에서도 ‘이항대립’은 존재한다. 거대 다국적기업의 카페와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카페, 스페셜티 커피와 커머셜티 커피, 공정무역 커피와 일반무역 커피, 유기농 재배와 일반 재배 등등.

이 안에는 이미 역사와 권력 그리고 문화에 의해 얽혀 있는 ‘기의’가 있다. 이런 기의를 해체해 나가다 보면 우리가 그 동안 쉽게 정의 내리고 단정지었던 것들이 매우 복잡한 관계 속에서 형성된 의미임을 알게 된다. 그 순간 우리가 말하는 ‘기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의’가 아닐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둘 사이에서 나타나는 ‘차이’만을 가지고 그 대상들을 규정지을 수 없다. 그래서 데리다는 ‘차연’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데, 여기엔 ‘무언가 규정짓기 전에 결정을 연기하다’는 뜻과 ‘다르게 하다’는 두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다.

한국의 커피시장에서 다국적기업의 카페와 로컬카페는 이항대립이 아니라 함께 존재해나가는 상호 보충적 관계이고, 커머셜티는 없어지고 스페셜티만 남아야 하는 우열의 관계도 아니다. 때로는 어떤 것들이 더 큰 것들을 해체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래서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질문을 받을 때 머뭇거리게 된다. 규정지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서 잠깐 판단을 유보하고 결정을 ‘연기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난립하는 커피 시장에서 벌어지는 의미 없는 언쟁과 다툼이 줄어들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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