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의 커피인문학] 커피애호가를 슬프게 하는 것들
하모니 이룬 커피가 주는 행복···바디감·여운·향기·품위의 조화
[아시아엔=박영순 경민대 호텔외식조리과 겸임교수,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 좋은 커피를 고르는 중요한 기준이 ‘단맛(Sweetness)’과 ‘산미(Acidity)’라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등 몇몇 악기의 연주가 멋지다고 해서 감동을 주는 교향곡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교향곡이 갖춰야 할 중요한 면모는 ‘하모니’이다. 모든 요소가 같은 수준에서 어우러져야 한다. 커피의 향미도 이와 같다. 우리의 관능을 매만져주는 여러 요인들이 튀거나 부족함이 없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밸런스를 갖춘 커피야말로 행복감을 준다. 단맛, 산미와 함께 바디감(Body), 여운(Aftertaste), 향기(Aroma), 풍미(Flavor)의 조화가 커피 맛을 좋게 만든다.
Body는 아우라(Aura)다. 우유가 맹물과 다른 질감으로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것은, 그 속에 녹아든 성분들이 많은 덕분이다. 미네랄이 풍부한 토양에서 결실을 맺은 열매의 씨앗에는 장차 생명을 키울 자양분이 잔뜩 농축돼 밀도가 높아진다. 이런 영양분 덩어리가 로스팅을 통해 풍성한 향미를 빚어내면서 강건함(아우라)을 지니게 된다.
바디는 균형(Balance)과 함께 향미를 길게 끌고 가는, 다시 말해 여운(Aftertaste)을 좋게 만드는 핵심요소다. 강하게 누른 건반에서 울려나오는 음이 더 오래 지속되는 것과 같다. 바디의 표현으로는 ‘가벼우면서도 섬세하다(light and delicate)’, ‘무거우면서도 깊이가 있다(heavy and resonant)’, ‘얇으면서 실망스럽다(thin and disappointing)’ 등이 있다.
단맛, 산미, 바디, 여운과 함께 커피의 맛(Taste)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향기와 풍미(Flavor)다. 맛에서 향기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향기가 나쁜 커피가 맛이 좋을 순 없다. 물론 향기가 좋다고 반드시 맛까지 좋다고 할 순 없다. 이취(off-odor)의 원인물질은 대체로 분자량이 큰 탓에 물에 녹아들거나 미세한 침전물로 숨어있다. 따라서 커피 맛을 정확하게 감별하려면 마시는 과정을 통해 미각적 특성과 후각적 특성의 어우러짐(플레이버)을 체크해야 한다.
플레이버는 aroma, acidity, body에서 경험하지 않는 커피의 면모를 묘사한다. 대표적인 표현들로는 richness(풍성함), range(다양함), complexity(복합미), balance(균형감), depth(깊이감), cleanness(깨끗함) 등이 있다. rough(거친), flat(평이한), monotone(단조로움) 등은 부정적인 플레이버를 묘사할 때 동원된다.
커피 맛이 자로 재듯 수치로 명확하게 나타낼 수 없는 오감(관능)의 영역이라지만, 품격을 가늠하는 지표와 표현 단어들은 이처럼 세밀하다. 향미 평가는 관능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 엄격하게 대할 일이다. 그럼에도 “마음이 가는대로 느끼라”며 없는 맛도 있다고 과장하는 ‘관능을 속이는 자’와 이를 맹목적으로 좇아 느껴지지 않는 맛에 심취하는 ‘관능에 속는 자’가 커피애호가들을 슬프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