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의 커피인문학] 커피, 너무나 매력적인 당신을 향한 ‘악마의 키스’
[아시아엔=박영순 CCA 커피비평가협회장, 경민대 호텔외식조리과 겸임교수] “Oh! How sweet coffee tastes. Lovelier than a thousand kisses. Softer than Muscatel Wine. Coffee, Coffee, I must have. And if someone wants to delight me. Let him pour me coffee.”(오~ 이 커피는 너무나 달콤하구나. 천번의 키스보다 달콤하고 백포도주보다도 더 부드럽구나! 커피, 커피야말로 내가 마셔야 할 것이야. 나를 기쁘게 하고픈 사람이 있다면 내게 커피를 따르게 하세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년~1750년)가 프리드리히 헨리의 극시(劇詩)를 토대로 1723년 작곡한 ‘커피 칸타타’에 나오는 대목이다.
한 광고카피 때문에 ‘커피칸타타’하면 ‘악마의 키스’(The kiss of the devil)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다. 악마가 등장하니 모차르트의 진혼곡처럼 엄중하고 진지한 작품이겠거니 할지 모르지만, 커피칸타타 내용은 희극이다. 소규모의 오페라라고 할 수 있는데, “시집가지 않으면 커피를 못 마시게 하겠다”는 아버지의 엄명에, 딸은 노래로 이 처럼 엄살을 떤다. 이 작품에 ‘키스’는 등장하지만, ‘악마’는 없다.
커피를 논한 유명 인사들의 어록은 커피를 대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많은 묘사 중에서 ‘악마의 키스’는 생각할수록 멋진 표현이다. 검은 커피를 대할 때의 두려움을 악마에, 일단 마시면 다시 찾게 만드는 중독성을 키스에 관능적으로 비유했다.
이 멋진 표현을 한 당사자로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 페리고르(Charles-Maurice de Talleyrand-Perigord, 1754~1838)가 지목을 받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렇지 않다. 그가 한 묘사는 다음과 같다.
“The instinct of the coffee is temptation. Strong aroma is sweeter than wine, soft taste is more rapturous than kiss. Black as the devil, Hot as hell, Pure as an angel, Sweet as love.”(커피의 본능은 유혹이다. 진한 향기는 와인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은 키스보다 황홀하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와 같이 순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다)
‘악마’와 ‘키스’가 등장하지만, ‘악마의 키스’라고 둘을 연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제서품을 받고 주교까지 오른 탈레랑으로서는 이 정도만으로도 파격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탈레랑은 프랑스혁명 속에서 교회재산의 국유화를 주장하다 교회로부터 파문당했다. 그가 커피를 사랑한 만큼 얼마나 고뇌에 찬 삶을 살았는지 짐작할 만하다.
악마의 키스라는 말이 터키속담(Turkish proverb)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따져보면 역시 그렇지 않다. 터키의 속담은 “Coffee should be black as hell, strong as death and sweet as love.”(커피는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렬하고 사랑처럼 달콤해야 한다)고 전한다. ‘악마’는 커녕 ‘키스’도 언급되지 않는다. 정작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헝가리 격언(Hungarian saying)에 두 단어가 함께 등장한다. “Good coffee should be black like the devil, hot like hell, and sweet like a kiss.”(좋은 커피는 악마처럼 검어야 하고, 지옥처럼 뜨거워야 하며, 키스처럼 달콤해야 한다)고 ‘악마’와 ‘키스’를 동시에 언급했다.
1889년 독일에서 출간된 서적엔 “커피는 지옥처럼 뜨겁고, 밤처럼 검으며, 죽음처럼 강렬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다”(Hot as Hades, black as night, strong as death, and sweet as love)고 적혀있다. 19세기 말 출간된 몇 권의 책에서도 커피를 두고 “Black as night, as bitter as death, and hot as sheol.”(밤처럼 검고, 죽음처럼 쓰며, 지옥처럼 뜨겁다), “Black as ink, strong as Hercules, and hot as any simile you please.”(잉크처럼 검고, 헤라클레스처럼 강하며, 간절한 당신의 미소만큼이나 뜨겁다)고 한 표현이 나온다.
마침내 ‘악마의 키스’라는 완벽한(?) 표현이 나오는 것은, 이로부터 한 세기가 흐른 뒤이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기네스북에 오른 영국의 소설가 바바라 카틀랜드(Barbara Cartland, 1991~2000)가 1981년 로맨스 소설을 펴내면서 제목을 <The kiss of the devil>이라고 지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무모하리만큼 처절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핼러윈(Halloween) 때 젊은이들이 많이 즐기는 칵테일 중에 ‘데블스 키스’(Devil’s Kiss)가 있다. 핏빛 리큐르 캄파리(Campari)와 포도주에 향료를 넣어 만든 베르무트(Vermouth), 스카치위스키로 만든 음료이다. 보기에 매혹적인데, 맛은 더욱 짜릿하다.
커피를 ‘악마의 키스’라 부르는 것에 왜 우리는 마음이 쏠리는 것일까? ‘터부(Taboo)를 뛰어넘는 파격이 주는 감성’만큼이나 커피의 향미를 느꼈을 때 받는 감동이 짜릿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멀리 하기엔 너무나 매력적인 당신을 향한 키스’만큼이나 언제나 간절하게 커피를 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