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욱의 커피에세이] 당신의 취향과 개성을 축복하는 ‘커피 한 잔’의 여유
[아시아엔=김정욱 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외래교수, 딸깍발이 대표] 어느 날 동네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던 제과점이 한 프랜차이즈 제과점으로 간판이 바뀐 것을 보고 놀랐다. 각종 대회에서 입상한 파티셰(patissier)가 운영했던 제과점으로 빵 맛이 좋아 단골손님도 적지 않았다. 더 놀란 것은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주인이 그대로였다는 사실.
왜 간판을 바꿨냐고 물어보니 대형 프랜차이즈가 주변에 생기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크게 떨어진 탓이라고 했다. 그는 프랜차이즈로 바꾸고 난 뒤에 매출이 다시 올라가기 시작해서 다행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필자를 비롯해 많은 동네사람들이 그 아저씨만의 레시피로 만든 독특한 빵을 경험할 수 없게 됐다.
가끔 TV 채널을 돌릴 때마다 깜짝 깜짝 놀란다. 사실 공포감마저 느껴진다. 요리프로그램 때문이다. 이 채널, 저 채널에서 앞다퉈 요리교실, 경연대회, 맛집탐방 등 음식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요리프로그램의 치솟는 인기에 대해 음식문화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면서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쏠림 현상’이라는 부작용에 대해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최근 TV에 출연해 유명해진 사람이 하는 곳이라면 취향과 관계 없이 그들이 무엇을 오픈해도 열광하면서 먹거나 마신다. 소비자 입장에서 “내 취향대로 내가 보고 내가 먹겠다는데 뭐가 문제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추세라면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취향이라는 것이 매우 한정될 수밖에 없게 된다. 비단 요리 쪽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커피시장도 이미 다국적 기업의 문화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거리에 즐비한 카페들은 어느 곳을 가도 똑같은 모습의 콘셉트로 서 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길 하나를 두고 건너편에 똑같은 브랜드의 카페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며칠 전 카페쇼에서 진행된 한 세미나에서, 영국에서 5년간 커피로스팅을 한 전문가가 미국-호주-영국이 커피를 볶는 방식이 다크 로스팅(Dark roasting)에서 라이트 로스팅(Light roasting)으로 바뀌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커피의 향미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카페들이 향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예전보다 커피를 여리게 볶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로스팅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일부 커피시장에 국한된 현상일 뿐이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다크 로스팅한 커피의 소비율이 높다. 이유는 다국적 기업의 커피에 익숙해져 있는 탓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진하게 볶은 커피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크 로스팅은 나름대로 매력적인 포인트가 있다. 만약 전 세계 커피 시장이 모두 라이트 로스팅으로만 볶는다면 그거 또한 끔찍할 것이다. 빈의 종류와 상태에 따라 그리고 기호에 따라 다크 로스팅이나 라이트 로스팅이나 각각 장단점이 있다.
그러나 다국적 기업이 아메리카노를 라이트 로스팅으로 바꾼다면 맛의 여부를 떠나 커피의 트렌드도 획일화 될 것처럼 보인다. 소비자가 다양한 맛을 포기하고 단 하나의 가치만을 쫓는다면 다양성이 주는 행복감을 얻을 기회조차 가질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이건 사실 ‘불의’의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특정 회사나 제품만을 ‘마니아’는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마니아는 소수일 때 적용되는 용어다. 만약 다수가 하나의 가치만을 지향한다면, 그것은 문화사회학적으로는 치유가 필요한 ‘병리현상’일 뿐이다.
병리현상은 계급이나 계층, 사회지위를 막론하고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사회 구성원들이 획일화된 가치만을 지향하는 쪽으로 삶의 방식이 바뀐다면 개인이 진정 원하는 다양한 선택과 그 가치들은 존중받을 근거를 잃게 된다. 다양함이 사라진 사회, 온통 하나의 색깔로 물들어져 있는 세상은 끔찍하다.
오늘 하루만큼은 주변의 작은 카페를 찾아 한 잔의 커피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만의 취향과 개성을 축복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