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욱의 커피에세이] 지금 행위(action)를 하고 계신가요?

커피의 향미를 평가하고 있는 딸깍발이 김정욱 교수
커피의 향미를 평가하고 있는 딸깍발이 김정욱 교수 <사진=커피비평가협회(CCA)>

[아시아엔=김정욱 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외래교수, 딸깍발이 대표] 어느 날 한 청년이 찾아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몇 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최근 그만두고 카페를 창업하려 한다고 했다. 커피에 대해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굳이 카페를 하고 싶은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카페를 열고 싶어 그 흔한 연애도 한 번 안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응’을 ‘이유’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된 마음으로 경쟁이 치열한 커피 시장의 실상을 들려주며 다른 일하라고 설득하고는 돌려보냈다. 그렇게 한 가장 큰 이유는 커피를 통해 ‘작업’이나 ‘행위’로 이어질 것 같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카페는 이미 포화상태다. 카페가 없는 곳에서 문을 여는 게 아니라 이미 있는 카페 옆에 생기거나 문을 닫은 카페가 주인이나 명칭이 다른 카페로 대체될 뿐이다. 이런 현실에서 카페 창업에 대한 상담 요청을 받을 때면 항상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독일 태생의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 Arendt)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이라는 글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로 구분하였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있다면 ‘노동’이고, 그를 통해 뭔가 의미를 얻고 보람을 느끼면서 보다 한 차원 높은 것들을 생각하고 일하면 ‘작업’이 된다고 했다. 그러한 생각들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 공동체를 위해 일한다면 그건 ‘행위’다.

순수 자연을 통해 뭔가 얻는 행위를 ‘노동’으로 보고 그것을 얻기 위한 도구를 생산하는 것을 ‘작업’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농업사회가 아닌 현대사회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의 일이 작업처럼 여겨진다.

여기에 많은 젊은이들이 오인하고 커피 시장에 들어온다. 자신이 카페에서 하는 일들이 뭔가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는 동시에 ‘행위의 영역’까지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양극화된 커피 시장에서는 대부분 ‘노동’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이 시장에 들어왔다가 실망하고 나간다. 자신들은 뭔가 ‘작업’을 할 거라고 생각하고 들어왔지만, 세 네 평 남짓한 공간에서 오로지 커피만을 뽑아내고 있다. 생계이 외에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젊은이들이 ‘노동’에서 ‘작업’으로 이어지도록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커피 업계의 구조적 문제가 가장 크다. 그리고 외부에서 ‘바리스타의 이미지’만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착각도 한 몫 거들고 있다.

노동에서 작업으로 이어지는 것은 1차 산업에서 2차 산업으로 또는 가공 산업이나 정밀 산업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작업’은 새로운 영역이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공간에서 ‘노동’ 안에서 머무느냐 그것을 뛰어 넘느냐의 문제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보람으로 느껴지는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가 기준이다. 이 때 보람이라는 것이 보다 나은 것들을 생산해 낼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며, 이런 것들에 대해 논의하면서 합리적 결정을 도출할 수 있도록 소통하며 참여하는 것이 ‘행위’다.

내가 선택한 일이 ‘작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한다. 커피 시장의 현실과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미지’만을 쫓아 창업을 욕심낸다면, ‘행위’에 도달하기 전에 지쳐 쓰러질지 모른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세계적 커피석학 케네스 데이비즈의 연구실을 찾아 커피테이스터의 역할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는 김정욱 교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세계적 커피석학 케네스 데이비즈의 연구실을 찾아 커피테이스터의 역할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는 김정욱 교수 <사진=커피비평가협회(CCA)>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