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의 커피인문학] 커피 한잔에 그윽한 봄향기···오렌지 꽃말은 순결·재스민은 상냠함, 커피꽃말은?
[아시아엔=박영순 커피전문기자] 올해도 어김없이 봄꽃이 돌아왔다. 4월 4일부터 1주일간 여의도 윤중로에서는 벚꽃축제가 열린다. 고단한 삶이 묻어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모처럼 활짝 꽃이 피어나길 바란다.
꽃나들이에 어울리는 커피는 단연 꽃향기 그윽한 커피겠다. 많은 사람들이 커피의 꽃향기를 즐기려면 에티오피아 커피를 마시라고 하는데, 사실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로스팅한 커피에는 꽃향기가 담겨있다. 세계적 커피비평가인 케네스 데이비즈 박사는 “한 잔에 담기는 커피에는 반드시 꽃향기가 있다. 꽃향기가 풍성할수록 좋은 커피”라고 말했다.
커피가 신선한 지 구별하는 관능적 지표 중 하나가 ‘꽃향기(Floral fragrance)’ 또는 ‘꽃과 같은 느낌(Flowery)’이다. 커피꽃(Coffee blossom)은 17세기까지 ‘아라비안 재스민(Arabian jasmine)’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향기가 재스민과 비슷하다. 휘발성이 상대적으로 강한 재스민보다는 달콤함과 따스함이 느껴지는 오렌지꽃을 닮았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흰 꽃잎이 5장인 커피꽃과 재스민, 오렌지꽃은 모두 흰색에 꽃잎이 5장으로 모양도 비슷하다. 꽃모양이 궁금하다면 웨딩드레스를 떠올리면 된다. 오렌지의 꽃말(Language of flower)이 ‘순결(Innocence)’ 또는 ‘영원한 사랑(Eternal Love)’이어서, 웨딩드레스에는 주로 오렌지꽃무늬가 들어간다. 재스민은 ‘상냥함(Amiability)’, 커피꽃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Always be with you)’라는 꽃말을 갖고 있다. 키가 3~4m인 커피나무 한 그루는 1년간 6000송이 이상의 새하얀 꽃을 피워낸다. 개화기에 커피밭은 함박눈이 내린 듯 장관을 이룬다.
좋은 커피에서는 항상 꽃향기가 난다고 해서 어떤 특정한 꽃의 느낌을 찾으려 애쓰다가는 금세 날아가는 꽃향기를 놓치기 쉽다. 꽃향기는 커피가 발휘하는 다른 향들에 비해 분자량이 작아 휘발성이 좋은 반면 여운이 길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집중력이 필요하다. 한 잔의 커피에서 굳이 하나의 꽃을 떠올리려고 집착했다간 왜곡된 관능에 갇힐 수 있다.
커피에서 피어나는 꽃향을 느끼기 위해선 감성(Emotion)에 촉을 대어 두는 게 좋다. 가볍고 신선한 티로즈(Tea-rose), 달콤하고 경쾌한 라일락, 따스하고 향긋한 아카시아, 시원하고 화려한 라벤더…. 꽃향은 단아한 여인이 지나간 뒤, 한 템포 늦게 코끝에 닿는 ‘소박한 분내’와 같기도 하다. 그것은 인공적이지 않다. 따스할지언정 결코 미간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자극적이지 않다. 묘한 생동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순간 체온을 살짝 올려놓는 관능적인 마력도 지닌다. 하늘하늘한 꽃잎보다는 벌의 다리에 빨갛게 혹은 노랗게 꽃가루를 묻히는 꽃술의 진한 향과 비슷하다. 어찌 보면, 잘 익은 사과 속에든 윤기 나는 빨간 씨앗을 실수로 깨물었을 때 살짝 느껴지는 파르르한 활달함과도 닮았다.
꽃은 오랜 진화과정에서 될수록 멀리 향을 퍼트려 보다 많은 벌과 나비를 불러들임으로써 번식에 유리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 그래서 분자량이 가볍고 향기를 인지하기 쉽다. 반면 한 번 꽃으로 유인한 나비를 돌려보내고, 또 다른 나비를 끌어드리기 위해선 향이 너무 오래 지속되는 것은 꽃의 입장에서 이익이 될 수 없다.
향기를 내는 물질은 일정 범위에서는 분자량이 클수록 향을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커피 속의 꽃향은 한번 인지하면, 관능적으로는 내 사라지는 듯하다. 우리네 후각세포에 매달려 오래도록 향기를 즐길 수 있게 해주지는 않는다.
바쁜 일상 때문에 꽃구경 갈 짬을 내기 어렵다면, 한 잔에 담긴 커피로 꽃나들이의 기분을 내도 좋겠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벛꽃잎 휘날리는 거리에서 단둘이 꽃향기 가득한 커피 마시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