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의 커피종교학] ‘커피와 종교’의 같은 점, 다른 점

[아시아엔=최우성 인덕대 교양학부 외래교수, 커피비평가협회(CCA) 서울본부장] 커피에는 좋은 향도 있고 결점도 있다. 커피가 본래 가지고 있는 향기성분들 중에 과발효한 시큼한 자극, 벌레 먹은 냄새, 썩은 뉘앙스 등은 미각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커피 생두가 원래 가지고 있는 향이 아니라 한잔의 음료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이취(異臭)들도 있다.

커피 볶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결점으로 작용하는 향미가 원두에 배어든다. 대표적인 것이 고무, 파이프담배. 탄 냄새 등이다. 또 볶은 원두가 공기와 접촉해 산패되면서 나는 냄새도 있다. 이런 냄새들은 로스터가 설치된 공간의 공기를 오염시킬 뿐만 아니라, 커피의 향미를 즐기려는 ‘테이스팅’(Tasting)을 방해한다. 커피의 원초적인 향미인양 둔갑하는 이들 결점의 냄새들은 로스팅을 통해 자신만의 향미세계를 추구하는 커피로스터들에게는 대충 덮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향미에 민감한 커피애호가는 디펙트(Defect)를 금세 알아차린다. 커피를 직접 볶지 않고 공급받아 사용하는 바리스타로서는 고객에게서 향미가 이상하다는 말을 들으면 난감하다. 로스팅과정에서 갖게 되는 결점들을 최대한 제어할 책임은 바리스타가 아니라 로스터에게 있다. ‘잘 볶아진 커피란 디펙트가 없는 커피’라는 말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대부분 이런 결점들은 커피를 볶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연기를 적절하게 제어하는 것만으로도 해소할 수 있다. 로스팅 머신을 청소만 잘 해줘도 사라지는 냄새들도 적지 않다. 사실 로스터들에게 로스팅 머신을 관리하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일이 힘들다고 하지 않으면 불쾌한 향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최근 커피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저가 원두도 부쩍 늘었다. 이런 커피에서 좋은 향미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저가 생두제품은 결점두가 많은데, 가격을 낮추기 위해 결점두를 골라내는 작업을 대체로 생략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맛을 추구하는 트렌드가 두드러지면서, 산지에서는 마이크로 랏(Micro lot) 커피를 생산하는 농장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여러 지역에서 생산된 커피생두를 한꺼번에 모아서 같은 이름을 붙여 수출하는 브라질 산토스와 같은 커피를 두고 향미를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커피의 향미를 이야기 하려면 자라나는 토양과 기후는 물론 재배자의 스토리까지 알아야 한다. 커피는 와인만큼 문화적인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디펙트의 문제는 커피를 마시는 소비자가 잘 모른다고 방관할 일이 아니다. 소비자들도 점차 커피의 맛을 가려내며 즐기고 있다. 정성이 덜 들어간 싼 커피에서 나는 찌든 담배 향, 고무탄내와 같은 결점들을 소비자들이 알아채기 시작했다.

커피로스터가 향미의 결점들을 극복하려면 기본적인 일들을 날마다 해내야 한다. 먼저 커피생두에서 결점두들을 세밀하게 골라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로스터 머신의 배관부위를 자주 청소해 주는 일이다.

결점두를 골라내는 작업이 지니는 가치를 종교에 비유할 수 있다. 종교란 무엇일까? 자연 상태의 커피생두와도 같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잘 볶으면 향기로운 한 잔의 커피가 되지만, 결점두를 제거하지 않으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기분 나쁜 음료가 되기도 한다. 커피를 누가 다루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다르듯, 종교도 누구의 손에 있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종교개혁자 마틴루터

종교가 사람들의 외면을 받지 않으려면 종교 스스로 철저히 자기 관리를 해야 한다. 로스팅 머신을 잘 관리하지 못하여 갖게 되는 결점들이 커피의 좋은 향기를 덮어버리듯, 종교가 본래의 모습을 잃고 세상과 타협하며 자정능력을 잃어버림으로써 갖게 되는 결점들은 종교의 순기능을 덮어버린다. 종교가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점차 외면당하고 있는 좋지 않은 커피와 같은 처지가 될 것이 뻔하다.

향기로운 커피 한잔을 위해서 로스터는 머신을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 것처럼, 종교도 철저히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 종교가 그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종교 내부의 결점들을 모른척하고 덮어두어서는 안 된다. 내부의 결점들을 꼼꼼히 찾아내서 제거함으로 본래의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 1517년 독일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운동의 시작점을 살펴보면,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새로운 종교를 시작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종교 내부의 결점들을 제거함으로써 종교가 지니고 있는 본래의 장점을 회복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종교가 제 역할을 못했을 때 여지없이 외면을 당했다. 한 잔의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기 위해선 결점두를 골라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럴진대, 영혼의 문제를 다루는 종교는 오죽할까? 악취가 섞인 향기는 아무 소용이 없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종교가 대중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종교가 철저한 자기개혁을 통해 결점을 솎아내는 노력으로 본래의 향기를 되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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