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의 커피종교학] 물과 종교, 그리고 커피

수천 번의 시험을 통해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때 물의 온도가 섭씨 92~95도, 9기압(bar)이 가해지는 상황에서 25초에 25ml를 추출하면, 커피성분이 가장 이상적으로 추출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수천 번의 시험을 통해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때 물의 온도가 섭씨 92~95도, 9기압(bar)이 가해지는 상황에서 25초에 25ml를 추출하면, 커피성분이 가장 이상적으로 추출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CCA>

[아시아엔=최우성 인덕대 교양학부 외래교수, 커피비평가협회(CCA) 서울본부장] 물은 생명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보이든 보이지 않던, 몸 안에 거대한 강을 지니고 있다. 식물들도 줄기 안에 물길이 있어서 생명을 유지시킨다. 사람의 몸에는 약 10만km의 혈관이 있는데, 이는 지구를 두 바퀴반 돌 정도로 길다. 이 길고 긴 혈관을 통해 산소와 물과 영양분이 이동한다. 사람의 몸에서 물의 총량이 줄어들면 갈증을 느끼게 되고, 이 상태가 오래되면 수분부족으로 신체 곳곳에서 이상반응이 나타난다. 수분을 지나치게 마셔도 안 되지만, 너무 부족해도 사람을 비롯한 동물이나 식물들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역사를 살펴보면 인류문명의 대부분이 강 주변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라크의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이집트의 나일 강, 인도의 갠지스 강, 그리고 중국의 황하(黃河) 유역은 인류의 4대문명 발상지이다. 사람들은 물이 있는 곳에서 문화를 꽃피웠다.

종교도 역시 물과 연관이 깊다. 유대교의 한 분파였던 에세네파는 팔레스타인의 사해(死海) 주변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 그들의 특징은 세속과 분리되어 종교의 순수성을 유지하며 후대에 경전을 전수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그들은 성경 경전들을 모으고 경전을 사본으로 만들어 보관하는 일들을 했다. 이들 공동체는 1947년 2월 베두인 목동에 의해서 그 성경사본이 발견됨으로써 존재가 확인됐다. 공동체 유적에서 경전을 사본으로 옮기기 전에 몸을 정결하게 씻기 위하여 물을 담아둔 장소가 발견됐다. 이를 통해 기독교에도 물로 몸을 씻음으로 죄를 씻는다고 고백하는 세례예식이 발전했다고 본다. 기독교의 창시자인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요단강에서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푼 세례요한이 에세네파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보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 몰린 순례인파. 위쪽 검은색 천으로 덮인 사각형 건물이 ‘카바(Kaaba)’이다. 무슬림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쌓은 신전이라고 주장한다. 아래는 ‘잠잠우물(Zamzam well)’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 몰린 순례인파. 위쪽 검은색 천으로 덮인 사각형 건물이 ‘카바(Kaaba)’이다. 무슬림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쌓은 신전이라고 주장한다. 아래는 ‘잠잠우물(Zamzam well)’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출처=LookLex Encyclopaedia>

이슬람교도 물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해마다 100만 명에 달하는 수많은 성지 순례자들이 방문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관광비자도 발급해주지 않는 폐쇄적인 나라이지만 이슬람교도들은 기꺼이 불편도 감수하고 사우디의 메카를 순례한다. 이슬람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메카에 있는 잠잠(zamzam)성수를 마시면 병이 낫게 된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재밌는 사연이 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은 아내인 사라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여종 하갈을 첩으로 들여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다. 하지만 사라가 이를 시기해 갈등이 빚어지자 하갈과 이스마엘은 집에서 도망친다. 광야를 헤매던 이들이 메카에 이르렀을 때, 아들이 목이 마르다고 하자 하갈은 물을 찾으러 사파 언덕과 마르와 언덕을 7번 오르내렸다. 그때 이스마엘의 발이 땅에 닿은 곳에서 샘이 솟아났다. 이때 하갈이 “잠잠”(물이여 멈춰라)이라고 외치며 둑을 쌓아 물을 마셨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지금도 성지순례자들은 사파 언덕과 마르와 언덕을 7번 왕복한 후 성수를 마시면 죄가 씻기고, 사탄을 물리치기 위해 7개의 돌을 던져야 한다고 믿는다. 매년 이곳에선 돌에 맞아 숨지는 순례자들이 속출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순례자들이 메카를 찾는다. 이로 인해 벌어들이는 사우디의 관광수입은 주변 요르단이나 이집트의 관광수입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

교황 클레멘트 8세가 커피를 세례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교황은 이슬람 이교도들이 마시는 커피를 기독교들이 마실 수 있도록 세례를 주고 커피를 형제로 받아들임으로 사탄과 이슬람교도들을 조롱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도 물은 커피를 종교적으로 새롭게 해석하며 종교와 커피를 이어주는 중요한 교량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원효대사가 그의 나이 40세에 자기보다 10살 아래인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는데, 남양해안에 이르러 비가 오고 밤이 되어 어떤 움막집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고 한다. 원효는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서 일어나 혹시나 하고 머리맡을 더듬어 보니 바가지에 물이 담겨있어 그 물을 마시고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바가지를 보니 자기가 바가지인줄 알았던 것이 해골이었으며, 바가지에 담겨있는 물에는 벌레가 우글거리고 있었다. 원효는 이 일로 심한 충격을 받고는 종교적인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물과 종교는 수많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물 없는 종교가 없으며, 종교에는 반드시 물이 등장한다. 물은 종교인들을 내면적으로 정결하게 하며 거룩하게 만드는 물질이다.

한 잔의 커피는 어떻게 완성되는가? 바리스타는 잘 볶아진 커피원두를 갈아서 가루로 만든 후 물을 사용해 커피성분을 추출한다. 그런데 커피 원두에 포함된 모든 성분을 추출하는 것이 아니다. 커피원두에 들어 있는 성분을 100이라고 할 때, 물에 녹지 않는 고형성분이 약 73%가 되고, 물에 녹는 성분들은 약 27%가 된다. 물에 녹는 성분들 중에서 18~22%만이 좋은 커피를 만드는 향미성분이다. 만약 그 이상 추출되어도, 그 이하가 추출되어도 커피는 균형감을 잃게 된다. 물이 커피가루를 통과하면서 좋은 향미성분만을 추출하여 맛있고 향기로운 커피한잔을 만들어 내는 것은 마치 종교와 같다.

예컨대, 커피성분이 지나치게 많이 물에 녹아 나오는 것은 종교적 광신주의에 비할 수 있으며, 성분이 너무 적게 물에 녹아 나오는 것은 종교적인 형식주의에 비교할 만하다. 반면에 좋은 물을 사용하여 신중하게 맛있고 향기로운 한 잔의 커피를 추출하는 것은 성숙한 종교생활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물 없는 커피는 존재할 수 없다. 물은 커피의 DNA와 정체성을 분명하게 해주는 중요한 도구이다. 물은 커피가 자기 안에 있는 온갖 향미와 영양분을 쏟아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매개체이다. 처음부터 물이 있었기에 인류문명이 존재했으며, 물이 없이는 종교도 커피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물은 깨달음이자, 종교의 핵심이다. 물을 사용해 커피를 추출하는 행위는 물을 통해 종교를 해석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커피라도 커피가루의 굵기를 달리하면 추출량이 달라지고, 커피에서 추출되는 성분과 향미도 달라진다.
같은 커피라도 커피가루의 굵기를 달리하면 추출량이 달라지고, 커피에서 추출되는 성분과 향미도 달라진다. <사진=C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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