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의 커피종교학] 자이언티의 ‘양화대교’와 자판기 커피
[아시아엔=최우성 인덕대 교양학부 외래교수, 커피비평가협회(CCA) 서울본부장]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이며, 철학자였던 블레이즈 파스칼(Blaise Pascal)은 행복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며 여기에 예외는 없다. 행복을 추구하는 수단은 저마다 다를지라도 그 모든 것은 한 지점을 향하고 있다.”
커피를 배 고파서 마시는 사람은 없다. 커피는 오히려 배고픔을 유발한다. 커피 안에 들어있는 ‘클로로겐산’이 소화를 촉진시켜 주기 때문이다. 커피는 대표적인 디저트이자 기호식품이다.
애호가들은 커피를 아침에도 마시고, 점심과 저녁에도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나면 마신다. 하루 커피 세 잔 정도가 적당하다지만 그 이상 마시는 사람들이 주변에 참 많다. 이것은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베토벤은 아침 식사 때 커피를 즐겼는데, 한잔에 정확하게 원두 60알을 골라 갈아서 마셨다.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는 84세까지 장수했는데, 하루에 50잔이 넘는 커피를 마신 것으로 전해진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서 하루에 소비하는 커피만 4억잔이 넘는다. 우리나라의 커피전문점도 이미 4만9600곳이나 되고, 지난해 1인당 커피소비는 484잔으로 폭증했다. 커피 소비의 증가는 중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2014년 현재 중국의 커피 소비자는 2억5000만명을 넘었다. 연간 소비량은 600억~800억 위안인데, 2020년에는 이 보다 10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사람들이 커피를 왜 마실까? 한 잔에 담기는 음료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행복’이다. 커피가 6세기 에티오피아의 목동 칼디에 의해서 발견된 이후 인종을 초월해 인류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커피만큼 쉽게 행복감을 주는 것이 있을까?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돈으로 계산 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행복을 가져다준다.
‘현대생리의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영국출신의 윌리엄 하비는 17세기 혈액순환의 원리를 최초로 발견한 인물이다. 그가 발견한 혈액순환의 원리는 의학계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 중의 하나로 꼽힌다. 그도 대단한 커피애호가였다고 하는데, 그가 임종을 맞게 되었을 때 변호사를 불러 커피콩을 내밀며 “이 자그마한 열매가 바로 나의 행복과 재치의 원천이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바흐의 ‘커피칸타타’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아! 커피의 기막힌 맛이여~. 그것은 천 번의 키스보다 멋지고 마스카트 술보다 더 달콤하다. 비록 혼례식은 못 올릴망정, 바깥출입은 못할망정, 커피만은 끊을 수가 없구나!”
커피는 행복이다. 이것은 커피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커피가 주는 행복은 예술가들과 사상가들에게는 영감과 지혜의 원천이기도 했다.
비약일지 모르지만 커피 한 잔이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에 끊을 수 없다면, 커피는 이미 거의 종교 수준으로 사람들의 삶 속에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며 행복을 추구한다. 처절하게 행복을 추구해도 그토록 원하는 꿈은 이루어지지 않고 점점 삶이 고단하지만, 그래서 허무하고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에도 한 잔의 커피는 힘을 준다.
봄날에 어울리지 않게 하늘이 미세먼지로 답답하지만 중랑천 벚꽃 길에는 벚꽃을 감상하는 인파로 가득하다. 꽃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문득 ‘자이언티’의 ‘양화대교’ 가사가 떠올랐다.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
힘든 노동 속에서 잠시 한숨을 돌리며 마시는 자판기 커피 한잔은 휴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행복’이다. 졸음을 이겨내려 택시를 세우고 자판기에서 뽑아 마시는 커피 한잔은 운전기사에게는 가족의 행복을 지켜주는 ‘안전’이라는 이름의 ‘행복’이다. 삶을 행복으로 위로하는 커피는 어찌 보면 종교만큼 요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