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의 커피종교학] 박진영 “노래는 ‘공기반, 소리반'”···커피향도 공기가 큰 영향

최우성 CCA서울본부장이 커피의 향미를 평가하기 위해 한 잔에 담긴 커피의 향기를 맡고 있다.
최우성 CCA서울본부장이 커피의 향미를 평가하기 위해 한 잔에 담긴 커피의 향기를 맡고 있다. <사진=CCA>

[아시아엔=최우성 인덕대 교양학부 외래교수, 커피비평가협회(CCA) 서울본부장]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기본적으로 공기를 호흡하며 살고 있다. 포유류(哺乳類)나 파충류(爬蟲類), 조류(鳥類)와 양서류(兩棲類)는 공기를 들이 마시고 뱉는 허파호흡을, 어류(魚類)는 아가미를 통해 물에 녹은 용존산소를 흡입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모든 생명체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공기를 호흡하도록 설계되었다. 공기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공기를 활용하는 방법에 따라 소리를 내는 발성이나 노래를 부르는 창법(唱法)도 달라진다. 가수 박진영이 노래를 심사하면서 “공기 반, 소리 반”이라는 말을 해 한동안 회자된 적이 있다. 공기를 잘 사용할 줄 알아야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다는 뜻이겠다. 그 역시 ‘공기 반, 소리 반’ 창법은 자신도 잘 안된다고 고백했다. 공기를 통해 발성이 되고, 공기를 통해 소리가 전달된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말씀으로 만들었다”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인간만큼은 흙을 빚어서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창조했다고 기록돼 있다. 인간의 코에 불어넣은 생기는 히브리어로 ‘루하흐’이다. 그 뜻은 ‘영(Spirit)’으로, ‘공기’ ‘바람’ 또는 ‘호흡’이라는 의미가 있다.

커피에게도 공기는 매우 중요하다. 공기가 없는 우주공간에서는 커피를 로스팅할 수도 없고, 향미를 느낄 수도 없다. 공기 중에 산소가 있어야만 불이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의 향기성분도 공기 없이는 추출할 수 없다. 멜리타나 칼리타, 고노, 하리오를 비롯한 브루잉 도구들은 공기의 흐름을 이용한다. 커피 드리퍼에는 돌출된 리브(Rib)들이 있는데, 공기의 흐르게 함으로써 커피수율을 맞추는 과학적인 설계들이다.

사이폰(Syphon)으로 알려진 진공 커피추출기(Vacuum Coffee Maker)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공기압력으로 진공을 만들어 커피를 추출하는 기구다. 아래쪽 용기에 물을 담고 가열하면 물은 유리관을 따라 위쪽으로 올라가 커피성분을 추출한 뒤 진공압에 따라 다시 원위치로 돌아온다. 이 역시 공기를 이용한 탁월한 커피 추출법이다.

공기는 이처럼 커피를 커피답게 하는데 필수적이다. 공기는 또 향기(Aroma)에서 필수적이다. 향기는 공기라는 매개체 없이는 후각세포에 전달되지 않는다. 커피의 향기가 제 아무리 좋아도 공기 없이는 무용지물이다. 우리는 커피의 향미 가운데 휘발되는 성분만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커피 아로마에서 공기는 없어서는 친구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공기는 커피를 신선하게 보존하기 위해 반드시 막아야 하는 귀찮은 존재쯤으로 취급받고 있다. 물론 커피의 성분에는 불포화지방산인 리놀렌산(linolenic acid)이 많아 산화에 민감하다. 이 대목에서 이산화탄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로스팅 과정에서 커피 생두의 세포에 갇히게 되는 이산화탄소가 일종의 보호막이 되어 산소에 의한 산화반응을 억제해준다.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면서 산패(酸敗)가 빨라진다.

공기 중의 산소로 인해 커피의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공기가 커피의 신선도를 떨어뜨리는 유일한 주범이라고 할 수 있을까? 로스팅된 커피가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유한성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운명은 아닐까?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늙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이 가장 존엄한 순간은 종교 앞에서 자신을 돌아볼 때가 아닐까 싶다. 종교 앞에서 인간은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잘못을 뉘우치기도 하며, 사명을 깨닫기도 한다. 종교 없는 인류사회를 떠올리기는 어렵다. 단지 인간을 생물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진화론적 가치관에서만 판단한다면, 애초에 인간의 존엄성은 찾아보기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는 ‘태양의 찬가(Canticle of the Sun)’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내 주여, 형제 바람의 찬양을 받으소서. 공기와 구름과 화창한 날씨, 그리고 모든 날씨의 찬양을 받으소서.”

성 프란체스코는 공기를 통해서 신의 영광을 느꼈다. 공기가 가지고 있는 지고의 가치는 자유로움이 아닐까? 공기는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며, 가는 곳마다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종교도 이와 마찬가지다. 종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좋든 싫든 인간의 모든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공기를 통해서 좋은 향기만 전달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때로는 종교를 통해서 부정적이고 잘못된 메시지들이 전달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종교 자체의 잘못이라기보다, 그 악취를 내는 인간들의 잘못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자유롭지 못하다. 눈에 보이는 종교는 교권화(敎權化)되고 제도화(制度化)되어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참된 종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지고의 가치인 자유로움을 지니고 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는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라고 묻는 니고데모에게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다”고 말한다. 바람은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다. 자유롭다. 하지만 모든 것에 영향을 준다.

참된 종교란 무엇일까? 향기로운 커피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아침 일찍 일어나 공기를 통해 전해지는 커피 향기를 맡으며 온몸의 모든 감각을 일깨워 신의 임재를 느낀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자유로운가?”

커피는 볶인 순간부터 산화한다. 로스팅 과정에서 원두에 갇히게 되는 이산화탄소가 빠져 나가면 그 자리에 공기 중의 산소가 침투해 원두의 기름 성분을 산화시키면서 품질을 떨어뜨린다.
커피는 볶인 순간부터 산화한다. 로스팅 과정에서 원두에 갇히게 되는 이산화탄소가 빠져 나가면 그 자리에 공기 중의 산소가 침투해 원두의 기름 성분을 산화시키면서 품질을 떨어뜨린다. <사진=C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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