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의 커피종교학] 커피가 차보다 유익함을 입증한 쌍둥이 실험

차가 부른 아편전쟁의 비극

[아시아엔=최우성 인덕대 교양학부 외래교수, 커피비평가협회(CCA) 서울본부장] 역사상 많은 전쟁이 있었고, 그 가운데 ‘마시는 음료’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 있다. 영국이 중국을 상대로 일으킨 아편전쟁(1840~1842)이다. 전쟁은 최신식 전함을 동원한 영국의 대규모 함포사격으로 싱겁게 끝나고 말았지만, 전쟁 이후에 일어난 일은 중국으로서는 재앙에 가까웠다. 약한 군사력을 눈치 챈 세계열강들의 본격적인 중국 침탈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중국의 차(茶)를 원했고,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기보다 자국의 식민에서 생산되는 막대한 아편으로 값을 치루기 원했다. 아편으로 차를 사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당시 영국은 중국인민의 건강을 생각해 줄 만큼 신사적이지 않았다. 그들의 조상은 해적들이 아니었던가?

영국인들은 중국에서 차를 구하기 위해 다량의 은을 지불하다가 결국 식민지 인도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던 아편을 중국에 풀었다. 중국의 황제들은 어떻게 해서든 아편만은 막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더 많은 차를 마시게 됐다. 그들은 더 많은 차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 이외의 지역에 차를 심기 시작했는데, 실론에서 시작해서 인도의 아셈과 다즐링까지 많은 지역에 차를 심어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

영국은 인도에서도 예의 잔인함을 보였다. 단지 차를 재배하기 위해서 아셈지역의 산림을 베어버리고 이에 반대하는 거주민들을 내쫒은 다음 차밭을 일구었다. 그리고 차 운송 외에는 쓸 일이 없는 대규모 철도공사까지 감행했다.

<사진=CCA>

이처럼 영국인들은 차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전쟁도 불사하는 민족이었다. 물론 영국에서도 커피하우스는 있었다. 하지만 비싸고 쓴 커피보다 우아하고 신비로운 동양의 차를 영국인들은 더 선호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당시에 커피는 예멘이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하기도 어렵고 값이 비쌌다. 하지만 자국의 식민지 인도에서는 차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영국인들은 커피 대신에 차로 방향을 바꾸었다.

차에도 카페인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에 각성효과를 따진다면 커피보다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차를 찾는 수요가 점점 늘었고 영국인들은 차를 구할 수 있다면 인도나 중국, 그 어디든 세력을 넓혀나갔다. 만약에 영국인들이 차보다 커피를 더 좋아했다면 역사의 수레바퀴의 방향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커피와 차의 약효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한다. 스페인의 국왕이었던 구스타브 3세는 커피의 약효와 차 중에 어느 것이 몸에 이로운지 가장 과학적인 방법으로 알아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임상실험을 했다고 한다. 사람을 죽여 사형선고를 받은 쌍둥이 형제에게 형을 감해주는 대신에 한명에게는 차만 마시게 하고, 다른 한명에게는 커피만 주어 마시게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차를 마신 쪽이 다른 형제보다 먼저 죽었다. 그의 나이 73세였다. 차보다 커피가 건강에 이롭다는 것이 임상적으로 증명이 된 후 스페인은 일인당 커피 소비량에서 세계 제 1위가 되었다는 흥미로운 일화다.

종교의 영역으로 넓혀 보면 차는 불교의 음료였다. 커피에도 킬디의 전설이 있듯이 차에도 달마의 전설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달마가 면벽정진을 각오하며 절대로 잠을 자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달마는 육체의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어버렸는데, 이에 화가 난 달마가 자기의 두 눈꺼풀을 잘라 땅에 버렸다. 그 곳에서 최초의 차나무가 자라났다고 한다. 후에 그곳을 지나던 달마가 자라난 차 잎 두 장을 떼어 자기 눈 위에 붙였는데 그것이 눈꺼풀로 변했다고 한다. 찻잎이 눈꺼풀을 닮아서 생긴 전설이라고 생각되는데, 차의 전설 역시 종교와 관계가 있고, 이슬람에서 잠을 자지 않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는 이야기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 흥미롭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인들은 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잠을 자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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