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이우근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현대신학의 흐름을 크게 자유주의와 정통주의의 대립으로 정리할 수 있다. 자유주의 신학은 그리스도교의 전통이나 교리, 성경의 권위와 영감(靈感), 초자연적 계시나 기적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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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직 묵상] 교회 지도자의 자격
함께 기도할 제목 1. 말씀 안에서 – 진리와 믿음, 영생의 소망을 날마다 붙들게 하소서 – 구원 받은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게 하소서 2. 나라와 민족
[잠깐묵상]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다?
욥기 11장 “그의 크심은 땅보다 길고 바다보다 넓으니라”(욥 11:9) 욥의 세 친구가 연이어 발언을 합니다.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했던 말 중에 틀린 말은 없습니다. 다
[전찬일의 2023칸 통신⑨] 결산(중)…”아시아영화 존재감 빛났다”
첫 번째 결산을 겸한 지난 여덟 번째 칸 통신 말미에, “올 칸에서는 여러 모로 아시아영화의 크고 작은 존재감이 빛났다”고 진단했다. 물론 과장인 감이 없지 않다.
[화성 고려인마을④]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발안 ‘문화더함공간 서로’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서부 화성의 한 중심인 향남읍에는 화성시외국인복지센터가 있다. 그런데 외국인주민이 많이 사는 향남읍의 구도심, 새로 들어온 이주민 공동체가 형성된 발안만세시장과는 거리가 멀다.
[베이직 묵상] 진노를 멈추는 예배
성경본문 사무엘하 24장 15~25절 24:15 그리하여 그 날 아침부터 정하여진 때까지,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전염병을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백성 가운데서 죽은 사람이 칠만 명이나 되었다.
[잠깐묵상]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
욥기 7장 “이런 생활을 계속해서 견디느니 차라리 이불보 덮어쓰고 숨 막혀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 더 이상 살기 싫습니다! 어느 누가 이렇게 살고 싶겠습니까? 나를 좀
좋은 의사의 ‘나비효과’와 바람직한 ‘환자운동’
[아시아엔=안기종 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 환자단체연합회 회장]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이원영 교수가 1학년 대상으로 ‘환자가 원하는 의사’를 주제로 내게 2시간 분량의 강의를 부탁했을 때가 2015년이었다. 의대생 1학년 대상
[웹툰 ECO티켓] 꿀벌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녹색라이더는 지월네(지속가능월드네트워크)의 콘텐츠제작 서포터즈입니다.
[이만수 칼럼] 좌절 딛고 60대 중반 재도전 나선 ‘참살’ 윤명근 대표
한국에는 오뎅밖에 없던 1999년, 일본에서 귀국해 일본의 100년 넘는 가마보꼬의 기술로 한국 최초로 ‘가마보꼬’라는것을 대한민국 상품 ‘참살’이라는 이름으로 회사가 만들어졌다. 마치 고려시대 문익점이 붓뚜껑에 목화씨를
[화성 고려인마을③] 3.1운동 터전 ‘향남’에서 한·중·러 만세 기념행사 개최를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경기 남부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도농복합도시 화성시는 크게 동부(병점, 동탄 등)와 서부로 나눌 수 있다. 서부는 다시 북쪽의 남양읍과 남쪽의 향남읍을
‘2030 부산월드엑스포 유치 제2차 해외기자포럼’ 개최
‘2030 부산월드엑스포 유치를 위한 제2차 해외기자포럼’이 5월 31일 오후 4시 부산광역시의회에서 열린다. 국제신문(사장 배재한)과 아시아기자협회(이사장 구본홍, 회장 아시라프 달리)가 공동주최하고 부산광역시(시장 박형준)가 후원하는 ‘2030 부산월드엑스포
[박영준 칼럼] ‘방호 산업화 전략’으로 ‘안보’와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아시아엔=박영준 현대건설 상무, 전 육사교수] 핵을 포함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가 이제는 더이상 공갈이 아니다. 날카로운 비수가 턱 밑 급소를 겨냥하고 있는 것과 같은 위험한 실체이다. 결코
[인터뷰] ‘우즈베키스탄에 꽂히다’ 개정판 낸 최희영 작가
‘실크로드’, ‘이슬람 사원의 푸른 돔’, ‘키질쿰 붉은 사막’, ‘고려인 역사’가 현지 여행 4중주 상세히 소개 2019년 1월부터 두 달 동안 <아시아엔>에 ‘우즈벡 투어’를 연재했던 최희영씨가
[베이직 묵상] 인구조사가 죄인가?
함께 기도할 제목 1. 말씀 안에서 – 하나님의 손에 빠질지언정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 죄값을 다 치르겠다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은 채 죄 용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