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다?
욥기 11장
“그의 크심은 땅보다 길고 바다보다 넓으니라”(욥 11:9)
욥의 세 친구가 연이어 발언을 합니다.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했던 말 중에 틀린 말은 없습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욥 앞에서 할 얘기는 아닙니다. 맞는 말을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상황에 맞는 말이어야 들리는 법입니다.
세상을 향한 교회의 화법이,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향해 던지는 메세지가 욥의 세 친구와 같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 교회에 대한 세상의 거부감은 교회가 전한 메세지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메세지를 전하는 교회의 태도에 대한 것 아닐까요?
진리를 전하고자 한다면 전하는 태도나 방식도 진리다워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중요하지만, 진리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 또한 진리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에 관한 얘기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청소년은 좋은 말을 듣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의 말을 듣는다.” 청소년뿐일까요? 우리 모두의 인지상정입니다.
좋은 말은 책상 앞에 앉아서 연구하는 만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좋은 사람은 상대의 곁에 머문 시간 만큼, 상대의 입장을 헤아린 만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세상의 시선은 “예수는 좋은데 그리스도인들은 싫다” 입니다. 아무리 진리라도 전하는 사람이 싫으면 좋게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 우리에게 익숙한 성경 구절입니다. “욥, 네가 지금은 천벌을 받아서 폭싹 망했지만 네가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면 나중에는 괜찮아 질거야”라는 정죄의 뜻으로 빌닷이 욥에게 한 말입니다.
이 얘기 바로 직전에 빌닷은 욥의 자녀들이 죽은 것도 다 자기들이 죄를 지어서 마땅히 받을 벌을 받은 것이라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욥의 친구들에게는 진리에 대한 지식보다 기본 예의가 더 필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