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거룩한 일 하다가 타락한 사람들


에스라 9장

만약에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한 첫날, 방의 한 벽면에 곰팡이가 가득 쓸어있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성전 재건 직후, 에스라의 기분이 그와 같았을 것입니다. 성전 재건이란 당시 유대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거룩한 행위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고 나서 드러난 백성들의 삶의 실상은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에스라 9:2-3)

정말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죄악에 찌든 백성들의 실상이 드러났습니다. 성전은 회복되고 있었지만 삶이 무너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로운 역사를 쓰며 오점부터 찍고 시작합니다.

성전 재건은 선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진행되는 동안 선과 악은 뒤엉켜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면 사람들의 삶의 방향도 하나님의 뜻과 그 방향을 나란히 할 것 같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선과 악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교회와 세상 사이에 있을 것 같은 그 경계선이 사실은 교회 공동체 한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자와 비신자 사이에 있을 것 같은 그 경계선이 사실은 신자의 마음 한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러한 현실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로마서 7:21)

개혁과 정의를 외치는 조직에도 부정부패의 얼룩이 있습니다. 평등을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도 서열의식이 존재합니다. 연합과 일치를 주장하는 단체들에도 갈등과 분열의 조짐이 늘 있습니다.

우리는 공평을 말하면서도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사랑을 하면서도 계산적이고 섬기고 희생한다고 하면서도 남이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마치 가라지와 알곡이 뒤섞인 밭처럼 우리의 마음밭이 그러합니다.

이러한 나의 실상을 끊임 없이 직시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속는지도 모르고 속고, 남까지 감쪽같이 속이다가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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