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비용이 이미 지불된 평화
역대하 32장
“어떤 백성이나 어떤 나라의 신도 능히 자기의 백성을 나의 손과 나의 조상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였나니 하물며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겠느냐”(역대하 32:15)
앗수르의 자신감이 느껴지십니까? 저 패기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요? 힘입니다. 당시 가장 강력한 패권국가가 앗수르였습니다. 앗수르를 막을 나라가 없었습니다.
힘이 있으면 살고 힘이 없으면 잡아먹히는 곳이 세상입니다. 힘을 빼고서 세상사를 논할 수 있을까요? 재력, 정력, 무력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재력이라고 하는 게 자본주의입니다.
이 셋뿐만 아니라 논리력, 사고력, 어휘력, 인력, 학력 등과 같이 모든 가치를 힘으로 환원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은 힘에 환장한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힘의 본질은 통제에 있습니다. 내가 상황과 사람을 통제해보겠다는 욕망과 타인의 통제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욕망이 곧 힘에 대한 숭배로 나타나곤 합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러한 힘의 원리를 본능적으로 체득하며 자랍니다. 힘겨루기가 없는 곳이 있을까요? 부부사이에도, 형제지간에도, 친구 사이에도 힘겨루기를 합니다.
평화란 어떤 상태일까요? 힘겨루기에 의한 서열 정리가 끝난 상태입니다. 또는 억지력에 의한 통제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이룰 수 있는 평화의 실상입니다. 이 평화는 끊임 없이 더 큰 힘을 요구합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더 큰 힘, 그보다 또 더 큰 힘을 계속해서 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핵 억지력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평화를 누리는 대가로 불안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평화인 것입니다.
이 평화를 지키느라 평화 속에서 평화롭게 말라 비틀어져가는 인류에게 다른 평화를 알려 주시려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복음이 왜 복된 소식입니까? 인간이 만들어내는 불안한 평안과 다른 평안에 대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진정한 평화가 걸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