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성경이 위인전기나 우화가 아닌 이유
역대하 18장
성경에는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신앙의 여정에서 실패를 맛본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또는 ‘이렇게 살아야겠다’와 같은 교훈을 얻습니다.
특히나 역대기 같은 책을 읽다 보면 수많은 왕들의 성공과 실패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읽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왕이 왜 이런 실패를 경험하게 되었는지, 반대로 저 왕은 어떻게 그런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신앙을 지킬 수 있었는지 등과 같은 것을 유심히 살펴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성경을 읽다가 놓치기 쉬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왕이 되자마자 자기 동생들을 죽이고, 유다 전역에 우상을 세워서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고, 온갖 사고란 사고는 다 치다가 창자에 병이 들어 비참하게 죽은 여호람 같은 왕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음은 이전에 다윗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 또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역대하 21:6-7)
성경을 읽으며 위대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신앙을 지켰는지를 보고 배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별로 지켜주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지키셨는지를 배우는 것입니다. 쓸모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들, 사용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인생을 하나님이 어떻게 사용하시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신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얼마나 큰지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 어떤 숭고한 신앙의 반열에 올라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이면에는 두 얼굴을 가진 채, 악취가 나는 속 마음을 숨긴 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다윗도 그랬습니다. 사랑하면서도 계산하고, 희생하면서도 이기적일 수 있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중요한 건, 그런 우리를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기로 결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할 가치가 없는 사람을 사랑해서 사랑받을 만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위인전기나 우화라고 하지 않고 복음이라고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