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서로 돕고 기다리며 함께 섬기다
역대하 29장
“그런데 제사장이 부족하여 그 모든 번제 짐승들의 가죽을 능히 벗기지 못하는 고로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그 일을 마치기까지 돕고 다른 제사장들이 성결하게 하기까지 기다렸으니 이는 레위 사람들의 성결하게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음이라“(역대하 29:34)
일이 진행되고 조직이 굴러가려면 질서가 필요합니다. 가장 간편하고 단순한 질서는 상명하복의 질서이죠. 명령과 복종의 질서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단시간에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쥐어 짜고, 쪼고, 부리고, 쥐 잡듯이 잡으면 됩니다.
조직이 대형화되고 복잡해질수록 지휘계통을 강화하지 않으면 조직이 잘 굴러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과의 질이 떨어집니다.
솔로몬 시절, 성전을 짓는데 투입된 노동력만 약 18만 명이었습니다. 인간은 개미가 아닙니다. 개미들은 가만히 내버려 둬도 본능적으로 협업하고 분업하지만, 인간은 가만히 내버려 두면 자기 편할 대로, 자기 중심적으로 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강력하게 이끌고 통제하지 않으면 일이 진행이 잘 안됩니다.
솔로몬이 죽은 다음 백성들의 대표들이 르호보암 앞에 와서 성토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성전을 짓는 일이 자발적 노동에 의해 이루어졌다기보다 강제 노역에 가까운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성전 짓는 일만 그랬을까요? 성전에서는 대제사장과 제사장들 그리고 레위인들과 성전 봉사자들이 함께 일을 했습니다. 다윗 왕의 살아 생전에는 그들이 상당히 자발적이고 수평적으로 일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죽고 나자 제사장들 내부에서도 솔로몬을 지지하는 세력과 아도니야를 지지하는 세력으로 나뉘었습니다. 이들 안에도 정치권력적 구조가 생기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결국 솔로몬이 왕이 되자 아도니야를 지지했던 세력의 대표인 아비아달은 제사장직에서 파면당해 아나돗으로 쫓겨납니다.
이후 히스기야 시대까지 수많은 왕들의 악정 속에서 성전 일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을까요? 제사장과 레위인 사이에 서열의식과 권력적인 계급구조가 강화되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것을 바로잡습니다. 레위인도 제사장처럼 하나님 앞에 서서 동등하게 섬기며 분향하도록 합니다.
예배를 섬기는 사람들끼리 상명하복의 관계로 일을 하면 예배라는 결과물은 깔끔하게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방송국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처럼 모든 순서가 초단위로 매끄럽게 진행될 것입니다. 예배에 참여하는 회중들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예배에 만족하실까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한다면 예배를 섬기는 사람들은 적어도 형제 자매여야 합니다. 약간은 서툴고 어설플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은 다듬지 않은 돌로 쌓은 예배 제단을 명령하셨습니다.
히스기야 시대에 제사장과 레위인의 새로운 형태의 동역 관계를 통해 유다의 예배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