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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승부'(勝負) 홍사성 “썩고 문드러져서 잘난 척 할 일 없을 때까지”

[오늘의 시] ‘승부'(勝負) 홍사성 “썩고 문드러져서 잘난 척 할 일 없을 때까지”

개를 만나면 개에게 지고 돼지를 만나면 돼지에게 진다 똥을 만나면 똥에게 지고 소금을 만나면 소금에게 진다 낮고 낮아서 더 밟을 데 없을 때까지 새우젓처럼 녹아서 더 녹을 일 없을 때까지 산을 만나면 산에게 지고 강물을 만나면 강물에게 진다 꽃을 만나면 꽃에게 지고 나비를 만나면 나비에게 진다 닳고 닳아서 무릎뼈 안 보일 때까지 먼지처럼 가벼워서 콧바람에 […]

[오늘의 시] ‘첫눈’ 구애영 “하늘은 첫눈을 짓고 아궁이는 쇠죽을 쑤고”

[오늘의 시] ‘첫눈’ 구애영 “하늘은 첫눈을 짓고 아궁이는 쇠죽을 쑤고”

죽교리골 외갓집 막 태어난 소를 봅니다 고물고물 그 붉은 살 어미 소가 핥아줍니다 하늘은 첫눈을 짓고 아궁이는 쇠죽을 쑤고   # 감상노트 이런 외갓집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갓 낳은 송아지를 보며 그것이 행운인 걸 아이는 알았을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끼를 핥아주며 근심스레 바라보는 어미 소와 쇠죽을 쑤며 소잔등을 쓰다듬는 할머니의 눈빛을 보는 일은 얼마나 큰 […]

[오늘의 시] ‘연’ 박권숙 “바람의 손가락 사이로 백년이 지나갔다”

[오늘의 시] ‘연’ 박권숙 “바람의 손가락 사이로 백년이 지나갔다”

  시가 찾아오기를 백년 쯤 기다리다 학이 되어버린 내가 긴 목을 뽑았을 때 바람의 손가락 사이로 백년이 지나갔다     # 감상노트 얼레에서 멀어질수록 연줄은 길게 늘어지고 그 연(鳶)과 바람 사이로 겨울새도 지나갔으리. 연을 날리는 사람이나 바람 타는 연을 바라보는 행인의 눈길이나 어디 걸리지 말고 하늘 아득히 날기를 바랐으리. 학처럼만 일념(一念)으로 그를 기다린다면 아니 올 […]

[입춘, 오늘의 시] ‘봄날’ 서정춘 “이런 날은 산불 같은 꽃상여 좀 타 봤으면”

[입춘, 오늘의 시] ‘봄날’ 서정춘 “이런 날은 산불 같은 꽃상여 좀 타 봤으면”

나여 푸르러 맑은 날과 바람 불어 좋은 날은 죽기에도 좋은 날 이런 날은 산불 같은 꽃상여 좀 타 봤으면,   # 감상노트 맑고 맑은 마음 잘 보이는 시. 진달래 활활 타는 산등성을 오르는 꽃상여 한 채. 이 날을 불가에서는 세상 젤 좋은 날이라 한다지. 고통의 바다에 태어났다는 고생(苦生)이 끊어지는 날이니. 큰스님 입적하시면 쾌활(快活), 쾌활! 한다는 […]

[오늘의 시] ‘입춘 부근’ 홍사성 “얼음장 밑 숨죽인 겨울 적막 깊다”

[오늘의 시] ‘입춘 부근’ 홍사성 “얼음장 밑 숨죽인 겨울 적막 깊다”

앙상한 나뭇가지 끝 생바람 지나가는 풍경 차갑다 벌레 한 마리 울지 않는 침묵의 시간 물소리도 오그라든 얼음장 밑 숨죽인 겨울 적막 깊다 참고 더 기다려야 한다는 듯 햇살 쏟아지는 한낮 지붕 위 헌눈 녹는 소리 가볍다 빈 들판 헛기침하며 건너오는 당신 반가워 문열어보니 방금 도착한 편지처럼 찬바람도 봄이다 애 태울 일 다 지나갔다는 듯   […]

[오늘의 시] ‘나그네’ 김남조 “삭풍의 추위를 벗고 옆에 앉으니”

[오늘의 시] ‘나그네’ 김남조 “삭풍의 추위를 벗고 옆에 앉으니”

내가 성냥 그어 낙엽 더미에 불붙였더니 꿈속의 모닥불 같았다 나그네 한 사람이 먼 곳에서 다가와 입고 온 추위를 옷 벗고 앉으니 두 배로 밝고 따뜻했다 할 말 없고 손잡을 일도 없고 아까운 불길 눈 녹듯 사윈다 해도 도리 없는 일이었다 내가 불 피웠고 나그네 한 사람이 와서 삭풍의 추위를 벗고 옆에 앉으니 내 마음 충만하고 […]

[오늘의 시] ‘민달팽이’ 홍성운 “정말이지 떨어지는 게 집값이면 좋겠다”

[오늘의 시] ‘민달팽이’ 홍성운 “정말이지 떨어지는 게 집값이면 좋겠다”

정말이지 떨어지는 게 집값이면 좋겠다 이삿짐을 챙기다 잠깐 쉬는 나무 그늘 풋감이 뚝 떨어진다 민달팽이 뿔 세운다   # 감상노트 등짐 없는 민달팽이 쉬어가는 감나무 그늘. 하도 이사를 다녀 주민등록증 주소변경란에 바뀐 주소를 적어 넣을 데가 없었지. 그릇 깨지지 말라고 신문지 같은 걸 구겨 넣고 한 달 전부터 바리바리 짐 싸던 시절 있었지. 언제쯤 내 […]

[오늘의 시] ‘미시령 편지’ 이상국 “백담사 큰스님이 그러는데”

[오늘의 시] ‘미시령 편지’ 이상국 “백담사 큰스님이 그러는데”

백담사 큰스님이 그러는데 설악산 꼭대기에서도 샘이 나는 건 지구가 자꾸 도니까 가장 높은 데가 가장 낮기 때문이란다 나는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 감상노트 그러니까 나는 합리적이지도 못한 채 어쭙잖은 사리분별의 습(習)에 눈먼 어른아이. 전도몽상(顚倒夢想). 나는 무엇에 속고 무엇에 홀려 어긋나 있는 걸까. 지구가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으니 지구가 도는 줄도 모르고 살았네. […]

[오늘의 시] ‘숲’ 조오현 “그렇게들 살아가고 있다”

[오늘의 시] ‘숲’ 조오현 “그렇게들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살고 있다. 그렇게들 살아가고 있다. 산은 골을 만들어 물을 흐르게 하고 나무는 겉껍질 속에 벌레들을 기르며.   # 감상노트 숲은 무얼까. 산은 무얼까. 산에 가면 산은 없고 돌과 흙, 나무와 새, 벌레와 풀 그리고 이름 몰라 불러주지 못한 온갖 유정 무정이 모여 산다. 끌어안고 버팅기고 밀뜨리고 기대이며 산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아프거나 곱고 미워도 한데 […]

[오늘의 시] ‘덜된 부처’ 홍사성 “실크로드 길목 난주 병령사 14호 석굴입니다”

[오늘의 시] ‘덜된 부처’ 홍사성 “실크로드 길목 난주 병령사 14호 석굴입니다”

실크로드 길목 난주 병령사 14호 석굴입니다 눈도 코도 입도 귀도 없는 겨우 형체만 갖춘 만들다 만 덜된 불상이 있습니다 다된 부처는 더 될 게 없지만 덜된 부처는 덜돼서 될 게 더 많아 보였습니다 그 앞에 서니 나도 덩달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 감상노트 금강경의 말씀으로 보면 형체를 갖추었다느니 못 갖추었다느니 할 것도 없겠다. 무릎 […]

[오늘의 시] ‘그리움의 동의어’ 김삼환 “산책로 비탈에 놓인 빈 의자도 좋겠다”

[오늘의 시] ‘그리움의 동의어’ 김삼환 “산책로 비탈에 놓인 빈 의자도 좋겠다”

새벽 풍경 지켜보는 새라 해도 좋겠다 내 몸 안에 흐르는 강물이면 어떤가 산책로 비탈에 놓인 빈 의자도 좋겠다 버리기 전 세간 위에 지문으로 새겨진 눈물 흔적 비춰보는 달빛이면 또 어떤가 그날 밤 술잔 위에 뜬 별이라도 좋겠다 깨알같이 많은 어록 남겨놓은 발자국에 비포장 길 얼룩 같은 달그림자 지는 시간 빈 방을 돌고 나가는 바람이면 더 […]

[오늘의 시] ‘풍경’ 권영상 “추녀 끝에서 붕어가 하늘을 난다”

[오늘의 시] ‘풍경’ 권영상 “추녀 끝에서 붕어가 하늘을 난다”

추녀 끝에서 붕어가 하늘을 난다.   재미있어도 저렇게 재미있어할 수 없다. 쟁그렁쟁그렁 엉덩이춤을 춘다.   어흠, 부처님이 그걸 내다보느라 오줌 누러 가실 새가 없다.   # 감상노트 위풍당당한 사원의 모양 나는 부연(附椽) 끝이 아니라도 좋다. 가난한 절집 살림이어도 처마 밑에 붕어 한 마리쯤은 거두니. 때로 쇳조각에 지나지 않는 형상도 바람처럼 노니는 자유가 되기도 해. 헤엄치는 […]

[오늘의 시] ‘나무와 새’ 동시영 “흔들리는 동안 나무가 행복했을까 새가 행복했을까”

[오늘의 시] ‘나무와 새’ 동시영 “흔들리는 동안 나무가 행복했을까 새가 행복했을까”

나무가 새의 그네인가 했더니 날아간 새가 나무의 그네였네   # 감상노트 그네는 무엇으로 존재하나. 흔들려야 그네라네. 누구든 무엇이든 와 닿고서야 흔들리는 인연. 앉을 만한 나뭇가지에 와 숙명처럼 앉은 새. 그 존재와 존재의 스침을 보며 짓고 허무는 단아(端雅)한 사유. 흔들리는 게 그네라면 바람도 나도 그네 아닌가. 흔들리는 동안 나무가 행복했을까 새가 행복했을까. (홍성란 시인 · 유심시조아카데미 […]

[오늘의 시] ‘남루’ 강문신···’홍매’를 기다리는 마음 그대로

[오늘의 시] ‘남루’ 강문신···’홍매’를 기다리는 마음 그대로

북을 쳐봤으면 꽹과릴 쳐봤으면 한이라도 빙글빙글 원이라도 덩실덩실 한 인연 남루를 풀어 여인아 춤을 췄으면   # 감상노트 기울지 않는 마음을 기울이려 하는가. 이 지독한 고뇌가 만든 참담한 시간을 누더기라 했는가. 남루라 했는가. 원한다고 이루어진다면 인생고해라 했을까. 태어나서 괴롭다는 고생이라 했을까. 이 연정(戀情) 이 마음의 고생을 꽹과리 치듯 북을 치듯 이루지 못한 사랑이라 해야 하는가. […]

유심시조아카데미 ‘시조 대중화’ 프로그램을 아십니까?

유심시조아카데미 ‘시조 대중화’ 프로그램을 아십니까?

[아시아엔=편집국] “뇌성같고 벽력같던 무술년은 아득히 보냈다. 이제 빛나는 황금돼지해가 열렸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기운차고 즐거운 나눔과 재능기부 시조문화 선양을 발원하며 시작한다.” 한국시조시인협회 부이사장으로 시조대중화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성란 유심시조아카데미 원장은 새해 벽두 설레기만 하다. 2019년부터 분기별 첫강좌(1월/4월/7월/10월 둘째 월요일)에서 공개강좌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는 “누구든지 시조(시와 동시 포함) 창작과 시낭송에 관심 있는 분들은 유심아카데미로 오시면 된다”고 […]

[오늘의 시] ‘내가 미안해’ 김영숙···만년의 거장들은 동심으로 세계를 본다

[오늘의 시] ‘내가 미안해’ 김영숙···만년의 거장들은 동심으로 세계를 본다

집채만 한 파도가 큰 바위를 덮쳤어요 바위야 미안해 너무 세게 때려서 보드란 거품 만들어 마사지를 해줘요 덩치 큰 바위가 파도에게 말해요 아니야 내가 미안해 내 몸이 너무 세서 부서진 물방울 모아 가슴 가득 안아요 # 감상노트 피카소가 그랬듯 추사 김정희가 그랬듯 만년의 거장들은 동심으로 세계를 본다. 동심이 천진무구와 고졸담박의 묘용을 펼친다. 아이의 눈으로 보는 파도와 […]

[오늘의 시] ’13월’ 박시교 “단 하루 마지막 달에 할 일이 아주 많다”

[오늘의 시] ’13월’ 박시교 “단 하루 마지막 달에 할 일이 아주 많다”

올해부터 내 달력에는 13월을 넣기로 한다 한 해를 12월로 끝내는 게 아쉬워서다 단 하루 마지막 달에 할 일이 아주 많다 첫사랑 산골 소녀에게 엽서를 보내고 눈 내리는 주막으로 친구를 불러내고 헐벗은 세월을 견딘 아내를 보듬어주고 또 미처 생각 못 한 일 없는지 챙겨가며 한 해를 그렇게 마무리해 보고 싶다 그렇다, 내 13월에는 참 바쁠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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