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Category: 오늘의시
[시와 음악] ‘노경老境’ 구상
여기는 결코 버려진 땅이 아니다. 영원의 동산에도 꽃 피울 신령한 새싹을 가꾸는 새 밭이다. 젊어서는 보다 육신을 부려왔지만 이제는 보다 정신의 힘을 써야 하고 아울러
[시와 음악] ‘무화과나무 아래’ 이흔복
무화과나무 아래 침묵과 휴식 가운데 진리를 갈망하던 나타나엘을 본다 최후의 심판에서 미켈란젤로의 가죽을 들고 있는 나타나엘을 본다 나타나엘이여, 그대의 운명을 남이 안다는 건 끔찍한 일이거늘
[시와 음악] ‘가을의 속도’ 최하림
줄달음쳐 오는 가을의 속도에 맞추어 나는 조금 더 엑셀러레이터를 밟습니다 차가 빠르게 머리를 들고 나아갑니다 산굽이를 돌고 완만하게 경사진 들을 지나자 옛날 지명 같은 부추
[시와 음악] ‘가을 편지’ 이흔복
고죽을 향한 홍랑의 일편심 사랑이 붉어서 가을은 달빛도 한층 높아만 갑니다. 당신은 물로 만든 몸 당신은 벌써 오랫동안 진리보다는 애정에 살고 있습니다. 나는 누군가의 꿈이
[시와 음악] ‘거미’ 김수영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시와 음악] ‘늦가을 감나무’ 함민복
저거 좀 봐 밝은 열매들이 매달려 있는 게 아니라 나무를 들고 있는 것 같네 사뿐, 들고 있는 것 같어 대롱대롱 들고 있는 것 같지 그러라고
[시와 음악] ‘마른 국화 몇 잎’ 황동규
다 가버리고, 남았구나 손바닥에 오른 마른 국화 몇 잎. 짧은 가을이 갔다. 떨어진 나뭇잎들 땅에 몸 문지르다 가고 흰머리 날리며 언덕까지 따라오던 억새들도 갔다. 그대도
[시와 음악] ‘늦가을 문답’ 임영조
그 동안 참 열심히들 살았다 나무들은 마지막 패를 던지듯 벌겋게 상기된 이파리를 떨군다 한평생 머리채를 휘둘리던 풀잎도 가을볕에 색 바랜 몸을 뉘고 편하다 억척스레 살아온
[시와 음악] ‘조금은 아픈’ 김용택
가을은 부산하다. 모든 것이 바스락거린다. 소식이 뜸할지 모른다. 내가 보고 싶고 궁금하거든 바람이 이는 풀잎을 보라. 노을 붉은 서쪽으로 날아가는 새떼들 중에서 제일 끝에 나는
[시와 음악] ‘텅빈 우정’ 심보선
당신이 텅 빈 공기와 다름없다는 사실. 나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당신의 손으로 쓰게 할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의 투명한 손이 무한정 떨리는 것을 견뎌야 할
[시와 음악] ‘사랑법’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시와 음악] ‘갈꽃’ 김지하
싸늘한 듯 살가운 가을풀 냄새 이리 돌아오는 옛 마을 코끝에 또 가슴속에 갈꽃 하나 흔들려 나 지금 거리에서 버티고 모멸에도 미소짓고 술 취한 밤 파김치
[시와 음악] ‘벼’ 이성부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넓은 사랑”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워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최명숙의 시와 음악] 아버지와 어머니
작은 가방을 들고 자하철 계단을 올라가는 노신사를 보며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다 막내가 첫 월급을 타서 사드린 가방에 문고판 책 한 권과 디카를 넣고 다니는 아버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