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음악] ‘노경老境’ 구상
여기는 결코 버려진 땅이 아니다.
영원의 동산에도 꽃 피울
신령한 새싹을 가꾸는 새 밭이다.
젊어서는 보다 육신을 부려왔지만
이제는 보다 정신의 힘을 써야 하고
아울러 잠자던 영혼을 일깨워
형이상形而上의 것에 눈을 떠야 한다.
무엇보다도 고독의 망령亡靈에 사로잡히거나
근심과 걱정을 능사能事로 알지 말자.
고독과 불안은 새로운 차원의
탄생을 재촉하는 은혜이어니
육신의 노쇠와 기력의 부족을
도리어 정신의 기폭제起爆劑로 삼아
삶의 진정한 쇄신에 나아가자.
관능적官能的 즐거움이 줄어들수록
인생과 자신의 모습은 또렷해지느니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더욱 불태워
저 영원의 소리에 귀기울이자.
이제 초목草木의 잎새나 꽃처럼
계절마다 피고 스러지던
무상無常한 꿈에서 깨어나
죽음을 넘어 피안彼岸에다 피울
찬란하고도 불멸하는 꿈을 껴안고
백금白金같이 빛나는 노년老年을 살자.
– 한국대표시인 101인선집, 구상(1919~2004), 문학사상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