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음악] ‘가을의 속도’ 최하림

줄달음쳐 오는 가을의 속도에 맞추어 나는 조금 더 엑셀러레이터를 밟습니다

차가 빠르게 머리를 들고 나아갑니다

산굽이를 돌고 완만하게 경사진 들을 지나자 옛날 지명 같은 부추 마을이 나오고 허리 굽은 노인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가는 모습이 보이고

가랑잎도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내립니다 물이고 가랑잎이고 가을에는 비명을 지르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산 속의 짐승들도 오늘은 그들의 겨울을 생각하며 골짜기를 빠져나와 오솔길을 가로질러 달립니다

가을은 우리 밖에서 그렇게 빠른 걸음으로 달리고 우리는 안에서 아가리를 벌리고 비명처럼 있습니다

– 최하림(1939~2010) 시집, ‘풍경 뒤의 풍경’, 문학과지성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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