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음악] ‘마른 국화 몇 잎’ 황동규

국화

다 가버리고, 남았구나
손바닥에 오른 마른 국화 몇 잎.

짧은 가을이 갔다.
떨어진 나뭇잎들 땅에 몸 문지르다 가고
흰머리 날리며 언덕까지 따라오던 억새들도 갔다.
그대도 가고
그대 있던 자리에
곧 지워질 가벼운 나비 날갯짓처럼
마른 국화꽃 내음이 남았다.

우리 체온이 어디론가 가지 못하고 끝물 안개처럼 떠도는 골목길에
또 잘못 들어섰다든가
술집 주모 목소리가 정말 편안해
저녁 비 흩뿌리는 도시의 얼굴 그래도 참을 만하다든가
그대에게 무언가 새로 알릴 거리 생기면
나비 날갯짓 같은 이 내음을 통해 하겠네.
나비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가서 폭풍을 낳는다고도 하지만
가을이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지는 마시게.

– 황동규(1938~) 시집, ‘사는 기쁨’, 문학과지성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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