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숙의 시와 음악] 아버지와 어머니
작은 가방을 들고 자하철 계단을
올라가는 노신사를 보며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다
막내가 첫 월급을 타서 사드린 가방에
문고판 책 한 권과 디카를 넣고
다니는 아버지는 당신의 세상을 찍어 저장했다
인터넷 속 위성지도로 태어난 고향집 근처를 찾아
어릴적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셨다
날마다 아버지의 새로운 세상처럼 말씀하셨다
친구 문병 갔던 병원의
암병동을 지나다 만난
링거에 핏기 없는 내 또래 여인을 보면서
어머니가 그리워졌다
아프단 말 한마디 없이 괜찮다고 괜찮다고 하던
어머니는 수선화처럼 살다 가셨다
돌아가시던 해 추석날
의사가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한 송편 한 개를
한참 동안 맛있게 드시던 기억은
아프게 바래지 않는다
너도 나이 들어 봐라 하시던 어머니 말씀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사월이면
수선화를 보러 나들이를 나선다
아버지에게 피천득 선생의 수필이야기도 들으며
사진 한 장 찍어 달래
꿈길에서 만날 어머니께도 안부를 전했다
최명숙 시집 “인연 밖에서 보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