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오월 갑사에서’ 최명숙
황매화 오솔길의 갑사를 걷는다
노랗게 진 꽃잎 위에 뿌려진 동박새의 노래로
푸른 성장을 앞둔 갈참나무의
그늘을 따라 오른다
앞서간 이들은
두 마리 용이 들고 있는 동종 앞 우물가에서
구척장신의 기인의 괴목전설과
우보살의 전설로 목을 축이고
바람결에 팔랑이는 연등은
어깨를 툭툭 치며 하늘로 가잔다
햇살에 나와 앉아 있는 비로자나부처는
오른손으로 왼손의 집게손가락을 말아
세상을 쥔 손으로
모든 것이 둘이 아님을 말해 주지만
일배, 이배, 삼배에도 수만의 상들이
온몸을 흔들고 가는 것을 불러 세우진 못했다
서울서 데려온 때 묻고 아픈 존재들과
갑사의 푸른 하늘 밑에서 이별을 한다.
그중 몇은 다시 나와 상행선 기차를 타고
부처에게 얻은 맑은 현재와 미래는
한발 앞서 집에 도착하였으리라
너무 자주 오지 말라는
부처의 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이미 예약한 마음의 자유승차권이 합장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