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숙의 시와 사진] ‘나무와 풀꽃’···”숲길에서 사계절이 지나서야”
숲길을 처음 걸을 때는 알지 못했다.
나무는 나무끼리 어깨를 맞대고
풀꽃은 풀꽃끼리 도란거리며
숲에서 자라는 줄 알았다.
나무는 넓은 가지와 잎으로
겨울 추위와 비바람을 막아
풀꽃이 꽃을 피우게 하고
풀꽃은 땅에 납작 엎드려
억수 같은 빗물에 흙이 떠내려가는 것을 막아
나무 뿌리가 땅 깊이 내린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무 그늘만 없으면 풀꽃이 자라는 게 아니며
풀꽃들이 없어야
나무가 뿌리를 튼튼하게 내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숲길에서 사계절이 지나서야 알았다.
최명숙 시집 <인연밖에서 보다>(도서출판 도반, 2018)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