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어느 세월에’ 최명숙
오래고 오랜 산사의 저녁 무렵
조실채 담 위에 핀 능소화가
아쉽게 남겨진 햇살에 물들고
큰스님의 까닭 없는 주장자 소리를 업고
메아리로 퍼지는 풍경소리
산문 밖으로 나갔던 노 보살의 세상사
막걸리 한 사발의 노래
온종일 수고로이 시장 거리를 헤맸어도
머리 세고 늙은 줄을 모르고
한 가닥 풀에 지나지 않은 신세
어느 순간에 부처의 손을 잡고
어느 세월에 부처의 발걸음을 따라
존재하는 소조의 꽃이라도 피울까?
최명숙 시집 <사람이 사람에게로 가 서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