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아래 ‘불교문화순례단’ 몽골 대평원 방문기

보리수아래 중증장애 시인들이 몽골의 아리야발 사원 계단을 오르고 있다. 


몽골 하늘에 울려 퍼진 한-몽 중증장애인들의 시와 사랑

작년 7월 23일~27일 4박 5일간 불교와 문화예술이 있는 장애인들의 모임 보리수아래 중증장애인 6명이 몽골불교문화순례를 다녀왔다. 7월 23일 오전 호우경보 속에 인천공항을 출발해 4시간 만에 도착한 몽골 칭기즈칸공항 하늘도 잔뜩 흐려 있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울란바토르 거리

도착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버스에 오르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앞을 분간할 수 없이 내리는 비는 그치질 않았다. 첫번째 일정이던 징기스칸 영화촬영지 관람을 바꿔 울란바토르로 시내 예술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은 몽골 전통음악, 춤, 마두금, 후미, 탈춤 등 유목생활에서 만들어진 문화 및 전통공연뿐만 아니라 몽골 여러 민족의 색깔이 담긴 몽골 전통옷도 엿볼 수 있었다. 전례 없는 폭우로 울란바토르 시내는 곳곳이 정전되고, 예약했던 식당도 문을 닫아 겨우 식당 한 곳에서 촛불을 켜고 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는 아시아 장애인 공동시집에 참여하는 몽골의 지체장애 시인 조릭트 바트호익이 함께 하여 한국 시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조릭트 바트호익 시인은 “한국 작가들을 보니 몽골 장애작가들을 위해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하였다. 또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푸레우수렝 바야르치맥 시인은 영상 통화를 통해 “선진국인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고 하였다. 몽골 첫 일정은 양국 시인 모두에게 의미 있는 교류의 시간이었다.

둘째 날인 7월 24일엔 징기스칸 마동상 관람, 테를지국립공원 입성, 아리야발사원 순례를 했다. 첫 방문지 징기스칸 마동상은 웅장한 자태가 은빛으로 빛났다. 장애 시인 일행은 스님과 포교사, 가이드와 보조 가이드, 운전기사들의 도움을 받아 내부까지 관람할 수 있었다. 마동상 위에서 뇌성마비 장애를 지닌 홍현승 시인의 활짝 웃는 얼굴이 일품이었다.

마동상 관람이 끝나고 숙소가 있는 몽골 테를지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에 우리나라의 성황당격인 몽골 민속신앙 어워에 잠시 들렀다. 시계방향으로 세번 돌며 기도하면 병과 재난을 막아준다고 한다. 문득 이 어워가 길 가는 사람들의 이정표나 등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워에는 방물 장수 같은 노점상이 있어 자잘한 몽골 전통 물건을 팔고 있다. 일행은 구경도 하고, 호랑이 가죽을 표적으로 만든 활쏘기 체험도 했다.

점심 후 테를지국립공원 내에 있는 게르촌에 짐을 풀고 아리야발 사원 순례에 나섰다. 아리야발 사원은 부처가 타고 다닌 코끼리를 형상화한 사원으로, ‘새벽사원’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불교에서 의미 있는 숫자인 108개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하는데, 이 긴 계단이 코끼리의 코를, 사원은 코끼리의 머리를 상징한다.

러시아 군정기에 불교가 탄압받으면서 많은 사찰이 사라져 몇 개 남지 않은 몽골의 사원 중 하나로, 1988년 복원했다. 일주문 격인 입구를 지나 오르는 작은 길에는 부처님 말씀을 새긴 글귀들이 세워져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오르니 마니차를 돌리는 팔각의 전각이 나왔다. 휠체어를 타고 온 회원들이 더 이상 올라가기는 힘든 길이었다. 스님들과 포교사 등 오를 수 있는 사람만 사원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마니차를 돌리고 있는 네 명의 회원들을 두고 시각청각 중복장애인 김동원씨와 사원으로 오르자니 눈물이 쏱아졌다.

장애인들이 다 함께 올라갈 수 없어 만감이 교차했다. 108 계단을 회원들의 이름을 한사람 한사람 부르며 올라가 사원에 도착했다. 사원 규모는 아주 작았지만, 기운이 크게 느껴졌다. 사원을 내려와 시원한 아이스크림으로 땀을 식힌 후에 서쪽으로 넘어가는 햇살을 받으며 거북바위를 구경하고 숙소인 게르로 돌아왔다. 저녁 시간에는 게르가 있는 평원을 트레킹하고, 밤에는 친교 시간을 가졌다. 밤 12시 넘어 쏟아지는 별은 평생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극히 좁은 시야로 별을 찍은 시각청각 중복장애인 김동원씨의 풍경과 야경과 별 사진이 기대되었다.

셋째날에는 테를지의 초원과 환경 속에 있는 유목민 게르를 방문하여 유목민 생활을 살폈다. 7명 정도의 가족이 살고있는 게르 내부는 좁았지만, 남자의 공간, 여자의 공간과 부엌 등이 나뉘어 있다. 거기엔 지나가서는 안 되는 곳, 밖으로 나올 때 문지방을 밟고 나오면 안 되는 등 규칙이 있었다. 어릴 적 할머니께서 문지방을 밟으면 복이 나간다며 못 밟게 하신 일이 떠올랐다. 여주인은 몽골 전통 마유주와 전통차 수태차를 내주었다. 마유주는 말의 젖을 두 번 발효해 만드는 술로 우리나라 막걸리와 색깔과 맛이 비슷하였다. 옛날에는 알코올 도수가 낮은 마유주를 주식으로 하는 라마승도 있었다고 한다. 수태차는 우유가 있는 차라는 뜻으로 우유에 찻잎을 넣어 끓인 차다.

우리가 방문한 게르의 여주인은 18살 청각장애 아들을 소개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마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아들은 장애가 있는 우리 일행을 반가워하면서 사진 촬영도 해주고 말 타는 것도 도와주었다. 말타기는 장애로 인해 오래 탈 수가 없어, 말을 타보는 정도로 간단히 마쳤지만 몇 명은 30분 정도 말을 탔다.

오후에는 책 읽는 형상을 한 바위를 멀리서 바라보았는데, 느낌이 좋았다. 저녁 식사 전 게르 주변을 산책하며 야생화도 보고 나무 그늘 밑에서 잠시 쉬는 여유를 가졌다. 몽골 가이드와 운전기사 등은 휴식 시간도 없이 우리를 도와주었다. 몽골인의 친절에 우리 모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저녁에는 초원을 바라보며 장기 자랑 시간을 가졌다. 우리 일행 외에 몽골 가이드, 게르 직원들까지 함께 해 더욱 즐거운 시간이 됐다. 

7월 26일 다시 울란바토르 시내로 나와 먼저 자이승불상공원을 찾았다. 불상 높이가 23m로 2007년 세워졌다고 한다. 울란바토르 시내를 바라보는 불상의 시야는 고층아파트보다 높았다. 마치 부처님이 자비롭게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불상 옆에 범종과 법고도 있어, 불상공원이 한국의 한 지점처럼 친숙하게 다가왔다. 이 불상공원은 대한불교조계종 영화사 월주스님의 원력으로 조성됐다고 한다. 지구촌공생회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불상공원 옆에는 ‘이태준 공원’이 있는데, 공사 중이라 둘러보지는 못했다. 이태준은 연세대학교 1회 졸업생으로 몽골에서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개설해 항일독립운동가들의 비밀 연락소로 삼으면서, 성병(매독) 퇴치에 앞장섰다. 몽골사람들은 이태준을 신인(神人) 혹은 ‘붓다 의사’라 칭송했다고 한다.

두번째로 간 곳은 복드칸 궁전박물관이다. 복드칸 궁전박물관은 몽골의 마지막 왕 자브잔 담바 훗타그트 8세가 기거했던 곳으로, 복드칸 겨울궁전이라고도 불린다. 1893년부터 1903년에 걸쳐 지어졌다. 왕이 1924년 별세할 때까지 20년을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7채의 라마 사원, 삼문, 왕과 왕비가 기거했던 2층 목조건물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 개의 문 중 두 번째 정문은 왕의 즉위를 기념하기 위해 당시 몽골 최고의 건축가들이 모여 지었다고 한다. 못을 단 한 개도 사용하지 않고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매년 왕이 제사를 지내던 장소와 전각, 북, 종이 있으며 당시 왕과 왕비가 살았던 침실, 거실, 식당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의복과 생활용품을 포함하여 마차, 가구 등 실제 사용했던 물건도 함께 볼 수 있다. 복드칸 안에는 세계의 여러 왕에게 받은 선물과 왕의 수집품, 박제동물도 눈에 띈다. 또한 150마리 표범 가죽으로 만든 호화로운 게르가 전시되어 있고 18~19세기 티베트 출신 작가들의 불교 예술품을 볼 수 있었다. 다만 내부 촬영이 안 돼 아쉬웠다. 잠시 앉아 쉬는 이들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다.

초이진 라마사원은 시내 중심 고층건물 사이에 자리 잡고 있어 독특한 멋이 있다. 몽골의 최후 통치자였던 복드칸이 동생이자 승려인 초이진 라마를 위해 1904년 건축해 1937년까지 사원으로 사용되었다. 몽골 혁명정부에 의해 역사문화 기념물로 지정되어 1942년 박물관이 됐다. 초이진 라마박물관 내부에는 5개의 크고 작은 사원이 함께 자리해 있다. 17세기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몽골의 회화와 조각, 자수, 의식용 탈, 의복, 목재와 청동 불상, 실크 탱화 등 불교 예술품을 중심으로 수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내부에는 인도에서 선물했다는 천년 된 동탑도 볼 수 있다. 사회주의 탄압을 받지 않았다면 라마불교의 문화를 그대로 더 볼 수 있었으리라.

세 번째 방문사원인 간등사원은 간단테그치늘렌 사원의 정식 명칭이며, 한자로는 감단사(甘丹寺)로, ‘완벽한 기쁨의 위대한 장소’라는 의미가 있다. 이 사원은 19세기 중엽 건축되었고 현재 몽골에서 가장 큰 사원이며 과거 사회주의 정권 하에서 유일하게 종교활동을 보장받았던 사원이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불상과 여러 개의 작은 절, 승려들의 기숙사, 부설 불교대학 등이 있다. 이 사원 건축은 처음 1838년 제4대 보그다 게겐에 의하여 시작하였으며, 제5대 출템 지그미드 담비잔찬에 이르러 완성됐다. 대부분의 몽골 사원과 마찬가지로 간등사원도 1937년 큰 피해를 입었는데 다행히 몽골 정부는 외국인의 종교 자유를 허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물로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이곳에 약 150여 명의 승려가 있다. 마침 예불시간이라 예불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간등사원에서 제일 눈에 띄는 사원은 흰색의 미그지드 장라이삭이다. 미그지드 장라이삭 안에 20톤 규모의 ‘관세음보살 불상’이 웅장하게 들어서 있다. 법당 안에서 참배를 하고 마니차를 돌리는 장애인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장애는 과연 무엇일까?’ ‘내게 장애는 무엇일까’ 하는 물음표와 함께…

이날 몽골역사박물관과 징기스칸 광장도 돌아봤다. 모두에게 몽골의 불교문화를 하나라도 더 체험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바빴던 하루였다.

일행은 몽골에 도착하던 날(7월 23일) 방문하려던 징키스칸 영화촬영장은 결국 찾지 못했다. 폭우로 유실된 도로가 복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캐시미어공장 견학을 끝으로 3박4일간의 몽골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한-몽골 장애시인 교류에 함께 한 이들. 홍현승 시인(앞줄 왼쪽 첫째 앉은이) 바트호익 몽골시인(앞줄 왼쪽 세번째) 최명숙 시인(앞줄 맨 오른쪽), 이경남 시인(뒷줄 왼쪽 두번째) 김영관 시인(뒷줄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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