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초 일본군 육군 대좌 노다이가 부산 제2상업학교에 부임해 왔다. 조선인 지원병제도가 성공하자 일제는 다음 단계로 각급학교에 현역 장교를 파견해 군사교육을 시행해 보기로 했다. 징병제를
Author: 엄상익
[엄상익의 시선] 일본군에 지원한 조선 청년들
1939년 발행된 일본 시사잡지 <모던 일본>을 본 적이 있다. 경성에서 일본 군인이 되겠다고 지원한 조선인이 12,300명이고 그중에서 600명을 뽑았다는 기사가 있었다. 한해 전인 1938년에 조선인들에게
[엄상익 칼럼] “한글 창제 반대한 게 일본놈”이라는 손자의 이상한 답안
딸이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는 아들을 데리고 동해에 있는 나의 집으로 왔다. “아빠 요새 쓰는 일제시대 역사에 관한 글 재미있어. 계속 써봐요.” 딸은 토론토대학에서 동아시아 역사를
[엄상익 칼럼] 일과 노동이 균형을 이루는 삶
그리고…외국인이 탄복하게 된 나라 대한민국 8월의 하얀 태양이 세상을 원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파란 바다 위에 몇 척의 화물선이 풍경화처럼 고요하게 떠 있고 하얀 구름이 수평선에서
[엄상익의 시선] “천대받던 기층민에게 조선 정부는 무엇이었나?”
변호사로 민족종교 단체의 소송을 대리하다가 문득 호기심이 일어 그 종교의 경전을 읽게 됐다. 경전 속에 있는 구한말의 애잔한 장면 하나가 가슴에 깊게 스며들었다. 시냇물가에 먹지
[엄상익 칼럼] 그 시절 베스트셀러 김동인의 ‘젊은 그들’
1930년대 전반 <동아일보>에 연재되는 글이 조선인들의 피를 들끓게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영혼 안에서 잊혀져 가는 조선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이 세상에 왔다간 조선의 메시아 대원군이 사람들에게
[엄상익 칼럼] “일본함대가 캘리포니아를 점령했다”
“미국 시장이 우리의 젖줄이기는 하지만 일본과 중국과도 경제적으로 힘을 합쳐야 하는 것 아닐까?” 일본함대가 태평양을 건너 미국의 군항 샌디에이고를 향하고 있었다. 일본함대는 단번에 샌디에이고를
[엄상익의 시선] 1930년대 창경원 벚꽃놀이와 재벌과 공산당
1934년 4월 18일 저녁 경성은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벚꽃놀이를 가기 위해 돈화문에서 창경원에 이르는 거리는 인파로 뒤덮였다. 벚꽃이 만발하는 봄이었다. 전국적으로 벚꽃놀이가 유행이었다. 경성사람들은 물론
[엄상익의 시선] 박흥식…종이장사에서 화신백화점 설립까지
변호사를 하면서 부자들을 많이 봤다. 대통령이나 장관 그 친척들이 땅이나 건물을 몰래 사들이기도 했다. 땅값이 폭등하고 그들은 시세차익으로 대대손손 부자가 됐다. 겉으로는 나라를 위하고 뒤로는
[엄상익의 친일논쟁16] 경성방직에 거액 대출해준 아루가 식산은행장
변호사의 일을 하다가 우연히 일제시대의 경성방직이라는 회사와 마주쳤다. 경주의 최부자로 알려진 최준과 고창갑부 김성수 집안이 합작회사 ‘조선인 주식회사 설립운동’을 일으켜 만든 회사다. 물론 조선인 유지들과
[엄상익의 시선] 경기중학, 정독도서관 그리고 나의 할아버지
나는 이따금 화동에 있는 정독도서관을 찾아간다. 내가 다니던 경기중학교 건물이 도서관으로 바뀐 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곳 벤치에 앉아 있으면 아스라한 기억 저편의 한 광경이
[엄상익의 친일논쟁⑮] 만주의 조선 재벌 ‘경성방직’과 김연수
1930년대 전반 경성방직은 봉천에 대표사무소를 개설했다. 경성방직은 조선의 명문가로 알려진 경주 최부자와 고창 갑부 김성수 집안이 주동이 되어 조선인주식회사설립 운동을 일으켜 만든 회사였다. 경성방직은 대련과
[엄상익의 시선] 송창식·’쿨’ 이재훈·남진·강태기···”그들의 내공은 끊임없는 연습”
화면 속에서 70대 후반의 가수 송창식씨가 늦은 밤 적막한 방안에서 혼자 기타 연습을 하고 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매일 끊임없이 기본을 연습해야 해요. 기타가
[엄상익의 시선] “중환자실에서 죽지 말자”
얼마 전 암 때문에 간을 이식받은 친구가 바닷가에 사는 나를 찾아왔다. 건강하던 몸이 반쪽이 된 것 같다. 암이라는 죽음의 통지서를 받고 많은 친구들이 저 세상으로
[엄상익의 친일논쟁⑭] 2007년 7월, 이상한 위원회
2009년 7월 20일 오후 2 시경이었다. 거리는 뙤약볕으로 후끈 달아 있었다. 나는 ‘청계11빌딩’이라고 금속판 위에 이름이 새겨진 7층 빌딩으로 들어갔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있는 건물이었다. 붉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