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 22일경이었다. 나는 LA에서 뉴질랜드로 가는 배 안에 있었다. 배의 둥근 현창을 통해 태평양의 넘실거리는 검은 파도가 보였다. 언덕 만한 파도는 불쑥 솟았다가 어느
Author: 엄상익
[엄상익의 시선] “나만의 색깔 가진 노년, 괜찮지 않은가?”
몇 년 전 동해역이 배경 중 하나인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동해역에서 기차를 탄 주인공 눈을 통해 보인 스산한 겨울바다가 묘사되어 있다. 날이 선 시퍼런
[엄상익의 시선] 이왕 세상 무대에 던져졌다면…
산책을 하다가 수평선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의 벤치에 앉았다. 나는 매일 시간과 보는 높이를 달리해 바다를 감상한다. 해변가 데크에서 걸을 때 보이는 바다는 미술관 벽에 걸려
[엄상익의 시선] 가수 김세환님 부부께 드리는 감사인사
바닷가에 한차례 비가 뿌렸다. 비 온 뒤의 고즈넉한 저녁 분위기가 거리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밥을 먹기 위해 뒷골목의 찌개집으로 들어섰다. 칠십대초쯤의 여성 혼자서 꾸려가는 자그마한
[엄상익 칼럼] 검사와 장관…2009년 광우병 괴담 조사실 ‘현장’
변호사를 하면서 나는 조사를 받는데 입회를 많이 했다. 검찰에 불려가 여러 시간 동안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한 내용들이 사실관계의 주춧돌이 된다. 그런 것들이 역사가 되기도
[엄상익 칼럼] ‘광우병 사태’ 당시 검찰 단면…”사냥개는 여우를 잡지 못했다”
변호사를 하면 우연히 역사적인 사건의 한 부분을 깊숙하게 들여다보는 수가 있다. 아주 작은 퍼즐 조각 하나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나중에 그 사건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완성을 위한
[엄상익 칼럼] 정운천 “광우병사태는 거짓 선동방송…장관이 닭보다 못해요”
광우병 사태는 허무맹랑했다. 거짓 선동방송이었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광장으로 몰려나왔다. 대통령이 붉은 촛불의 바다를 보고 겁을 먹고 청와대 뒷산으로 도망했다. 도대체 이게 뭐지? 하고 의혹이
[엄상익 칼럼] 그때나 지금이나 남의 입 틀어막으려는 세력들
오늘자 <조선일보>에 난 작은 칼럼이 눈에 들어왔다. 역사교과서 집필자가 고통을 하소연하는 내용이다. 그는 개인주의 자유주의자로서 시장경제를 인정하는 입장에서 교과서 내용을 썼다고 했다. 일부 좌파 언론이
[엄상익의 시선] 죽음학자 최준식 교수에 묻다 “사후 세계 있습니까?”
나는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해 호기심이 많다. 나이를 먹어가니까 더 궁금해진다. 나의 영이 이 세상으로 여행 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면 마음이 편하고 푸근해 질
[엄상익 칼럼] 대통령 부부의 돈 쓰는 법
50년만에 육영수 여사가 사용했던 특수활동비 내역이 언론에 밝혀졌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대통령 부인인 육 여사에게도 어려움을 호소하는 많은 편지가 갔다. 육영수 여사는 저녁마다 그 편지를
[엄상익 칼럼] “먼저 죽은 사람들은 나의 훌륭한 스승이었다”
어느날 아침 기도를 하는 데 난데없이 두 죽음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첫 장면은 글을 쓰다가 책상에 머리를 대고 조용히 죽은 장면이었다. 그가 쓴 원고들이 바람에
[엄상익 칼럼] 현충원 안의 부끄러운 귀신들
소설가 정을병씨가 살아 있을 때 친했었다. 그는 소설은 몸으로 써야 한다는 문학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그는 국토건설단에 직접 들어가 체험을 하고 <개새끼들>이라는
[엄상익 칼럼] 황석영의 뉴라이트의 식민지근대화론 ‘비유법’
황석영 작가가 방송에 나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이렇게 일침을 놓았다. “그냥 쉽게 말할 수 있어요. 우리 집에 도둑놈이 들어왔는데 이
[엄상익 칼럼] 이종찬과 안병직 두 원로의 역할은 과연 뭘까?
2007년경 나는 일제시대를 살았던 소설가 김동인과 조선인 사업가 김연수에 대한 친일 소송의 변론을 맡았었다. 그들이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나 여부를 판단하는 법정이었다. 나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그 시대의
[엄상익 칼럼] 전공의 사태를 보는 시각…”의사들 자존감은 소명의식에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했고, 당대표였던 김종인씨가 넘어져 이마가 찢어졌는데 응급실 스물 두 군데에 연락해도 치료해 주겠다는 데가 없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일반 국민은 다치면 그냥 죽어야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