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수뇌부가 작전지휘를 그르친 가운데 각급부대의 의지와 역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6·25 초기 우리 군의 현실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김종오의 춘천회전과 김홍일의 한강선 방어이다. 김종오의
Author: 김국헌
[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⑧ 전쟁초기 2주간 이승만의 ‘의문투성이’ 행적
이승만은 25일 09시에 국방장관 신성모에게서 북한의 남침보고를 받았다. 오후 2시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채병덕은 후방사단을 진출시켜 반격을 감행하면 능히 격퇴할 수 있다고 보고하였다. 이승만은 26일 03시에
[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⑦얼빠진 채병덕···전화기 꺼놓은 신성모
6월 25일 04시, 북한군은 38도선 전 전선에서 공격을 개시, 남침을 시작하였다. 육군본부는 전일 육군회관 준공 축하 파티 후 대부분의 고위 직위자가 명정(酩酊)상태에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⑥군지휘체제, 북한이 남한 압도
1949년 12월 육군본부의 정보판단은, “1950년 봄, 적정에 급진적 변화가 있을 것이며, 북한군은 대남 후방교란과 내부붕괴공작을 강행하여 남침의 구체적인 여건을 조성하고, 결정적인 시기가 포착되면 지체 없이
[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⑤’커밍스 수정주의’의 재수정
6월 24일자 <문화일보> 보도를 발췌하여 인용한다. 수정주의 사관에 기초해 한국전쟁사를 연구해온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 대학 석좌교수가 “1950년 6월 25일 일어난 한국전쟁은 남침이며 미국이 의도적으로
[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④ 대통령서 사단장까지 군 지휘체제 ‘엉망’
6·25때 전군이 통합·조정되지 못하고 각급 지휘관의 의지와 능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당시 우리는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김국헌의 다시 쓰는 6·25] ②’잊혀진 전쟁’ 아닌 ‘잊혀진 승리’
전쟁에 개입된 나라들이 그 입장에 따라 상이한 용어를 사용하여 온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미국과 일본이 싸운 태평양 방면의 2차대전을 미국은 태평양전쟁이라고 부르고 일본은 (지금까지도)
[김국헌의 다시 쓰는 6·25] ①춘천회전···작전은 군인들 피땀으로
6월 25일 공격이 개시되자 북한군 조공집단인 2군단은 화천-춘천 및 인제-홍천 접근로에 각각 1개 사단을 지향토록 하였는데, 주공인 2사단은 춘천을 점령함과 동시에 신속히 이천을 경유, 수원으로
[김국헌의 직필] ‘커밍스의 6·25 기원설’에 대한 반박
1950년 4월 중순 바실리에프 중장을 단장으로 한 소련군 고문관이 평양에 도착하여 남침 작전명령을 작성하게 된다. 스탈린의 개입은 인민군 창설과 증강에서 작전명령을 작성하고 작전을 지휘하는 수준에까지
[김국헌의 직필] 한국 진보의 수준
김일성이 가짜라는 주장은 여러 곳에서 제기되었다. 그러나 김일성이 1937년 6월 보천보전투에 참가한 그 김일성인 것은 맞다. 김일성의 본명은 김성주(金聖柱)다. 그는 1929년에서 1931년 사이에 김일성으로 개명하였는데
[김국헌의 직필]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 멘토 ‘박정희’의 딸, 그리고 시진핑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다. 단순히 한국 대통령이 아니다. 덩샤오핑(등소평), 장쩌민(강택민), 후진타오(호금도)의 멘토였던 박정희의 딸이 한국 대통령으로서 중국에 가는 것이다. 박근혜는 21세기의 박정희다. 이와 같은 박
[김국헌의 직필] 대북협상에서 ‘형식’이 중요한 이유
어느 신문사 대기자의 칼럼에서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형식 없는 내용은 맹목적이고, 내용 없는 형식은 공허하다’고 말했다”라는 구절을 보았다. 신문에서 철학자의 명문을 보는 것은 반가운 일이기는 하나,
[김국헌의 직필] 북-중관계 제대로 알면 남북관계해법 보인다
미군들에게 한국과 미국은 같이(together) 싸운 나라고 일본과 미국은 상대하여(against) 싸운 나라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한미일이 가깝다고 하여도 이 역사적 사실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교육(?)하고는 했다.
[김국헌의 직필] 신뢰성과 정확성에 관하여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북조선공산당으로 탈바꿈한 날짜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위키 백과에 따르면 1946년 6월 22일 북조선분국 7차 회의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되어 있으나 김준엽·김창순의 기념비적
[김국헌의 직필] ‘조선공산당’과 ‘조선로동당’
조선공산당은 1925년 4월 결성되었다. 1917년 러시아에서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나고 1921년 중국공산당이 창당된 것과 비교하면 조선에서도 비교적 일찍 공산당이 조직된 셈이다. 그러나 조선공산당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