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개혁 진보당사건 조봉암 자유당 정권에서 1959년 조봉암이 진보당 사건으로 사형 당했다. 2011년 재심에서 무죄가 되었다. 법원은 드물게 사실상의 사법살인에 대해 사과했다. 그때 대법원에 김병로가 있었다면
Author: 김국헌
전두환 죽음과 ‘역사의 평가’
전두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노태우에서 정권을 받았다가 오히려 돌려친 김영삼은 방법이 다르다. 박철언은 이를 정확히 내다보고 있었다. 노태우는 체육관 선거가 아니라 국민 직선에 의해
가짜뉴스 ‘엘리자베스 여왕 서거’에 대한 ‘단상’
엘리자베스 여왕이 서거했다는 엄청난 보도가 일부 방송에 있었으나 조용했다. 무슨 일인가 했는데 프랑스 기자가 조작한 거짓보도라는 것을 아들이 알려왔다. ‘그럴 수가…’ 하면서도, 프랑스 기자가 했다는
‘종전선언’이 정전협정과 평화협정의 중간단계?
군제 연구에 있어서는 지금까지의 실제와 경험이 중시되어야 한다. 변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되 변할 수 없는 것은 불변으로 놓고서 생각해야 한다. 국민 다수는
육해공군 균형발전…’이상’과 ‘현실’의 괴리
김영삼 대통령 당시 강릉에 북한공비 침투사건이 터졌다. 당시 이양호 의장은 공군총장 출신이었다. 육군은 대침투사건에 익숙했지만 이양호 의장은 그렇지 못했다. 작전 진도를 알기에 급한 김영삼 대통령은
전두환 장례식날 떠오른 평화의댐·강변도로·체신혁명 ‘단상’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평화의댐은 높이 161m, 저수량 27억톤이다. 일제가 화천댐을 만들고, 박정희 대통령이 소양강댐을 만들었다고 하면, 전두환 대통령은 평화의댐을 만들었다. 평화의댐에 이르는 길은 대부분
‘연평해전’과 ‘주적개념’에 휘둘린 군 장성인사
1999년 연평해전이 벌어졌다. 우리 해군의 완승이었다. 전승의 공은 2함대사령관 박정성 제독의 왕성한 공격정신이었는데 그는 진급을 하지 못했다,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고
정비석의 ‘산정무한’과 금강산보다 아름다운 우리 ‘말글’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늦가을, 한자어로 만추다. 이맘때만 되면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정비석의 금강산 기행기 ‘산정무한’이 떠오른다. 반세기 훨씬 지난 일이지만, 바로 지금 내가 금강산을
전두환의 ‘공과’와 역사평가의 ‘딜레마’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983년 10월 3일 버마 아웅산사태가 일어났다. 전쟁으로 옮길 수 있었다. 1차대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암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북한 소행이라는 것을 당시 안기부 2차장이던
“노태우 떠나고 남은 전두환, 그의 입술을 주목한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6.29선언이 한국민주화의 효시였다”는 점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민주화는 당연히 김영삼, 김대중의 몫이었다. 당시 살지 않았거나 어렸던 중년 이하 사람에는
노태우 정부 외교안보 성과들···북방외교·남북기본합의서·818국방개혁·남북유엔동시가입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89세로 별세했다. 이로써 또 한 세대가 막을 내렸다. 일제 탄압이 극에 달했던 1930년대 초에 태어나 소학교를 일제
동갑내기 ‘걸프전 영웅 파월’과 ‘살신성인 강재구’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콜린 파월 전 미 합참의장 및 국무장관이 10월 18일,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91년 걸프전에서 파월은 영웅이었다. 그토록 짧은 시간에 그만한 완승을
‘항모’ 통해 본 미국과 중국 해군 전력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지난 8월 미국의 칼빈슨호와 로날드 레이건호, 영국의 퀸 엘리자베스호, 일본의 헬기 항모 이세가 남중국해에서 기동훈련을 했다. 네덜란드, 뉴질랜드도 참여하여 총 150척이
알아두면 쓸모 있는 영연방 국가의 군사 상식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명화 <콰이강의 다리>는 1957년에 나왔다. 2차대전이 끝난 지 12년, 한국전쟁 휴전 4년 만이다, <콰이강의 다리>는 실제 사실이다. 몇 가지 군사적 상식을
일본육사 출신 김석원 설립 성남고, 이승만 정권 하 백범 묘소 참배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김석원 장군은 성남고교의 교장을 지낸 교육자였다. 자세는 항상 곧았다. 중일전쟁에서 행군을 많이 해서 편하다고 했다. 당시 김석원 중좌는 용맹으로 유명했다. 봄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