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석의 ‘산정무한’과 금강산보다 아름다운 우리 ‘말글’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늦가을, 한자어로 만추다. 이맘때만 되면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정비석의 금강산 기행기 ‘산정무한’이 떠오른다. 반세기 훨씬 지난 일이지만, 바로 지금 내가 금강산을 오르는 것 같은 느낌 그대로다. 한 대목이다.
밤 깊어 뜰에 나가니, 날씨는 흐려 달은 구름 속에 잠겼고, 음풍이 몸에 선선하다. 어디서 솰솰 소란히 들여오는 소리가 있기에 바람 소린가 했으나, 가만히 들어 보면 바람 소리만도 아니요, 물소린가 했더니 물소리만도 아니요, 나뭇잎 갈리는 소린가 했더니 나뭇잎 갈리는 소리만은 더구나 아니다. 아마, 바람소리와 물소리와 나뭇잎 갈리는 소리가 함께 어울린 교향악인 듯싶거니와, 어쩌면 곤히 잠든 산의 호흡인지도 모를 일이다.
정비석 하면 자유당 때의 신문소설 <자유부인>이 얼른 떠오르지만 그는 수필문학에도 탁월한 자취를 남겼다. ‘산정무한’은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이처럼 섬세하고 유려하게 그려낼 수가 없는데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더할 수 없이 잘 드러난다.
우리말은 개념어인 명사와 동사가 약하고 서술어인 형용사와 부사가 강하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정비석에게서는 우리 어휘의 풍부함이 놀랍다. 셰익스피어를 인도 하고도 바꾸지 않겠다는 것이 영국의 자부심이라면, ‘산정무한’을 읽으며 한 사람의 뛰어난 문인이 우리 문화에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를 새삼 절감한다.
민태원의 청춘예찬, 이양하의 신록예찬은 또 어떠한가? 기미독립선언문을 읽어본 일본학자가 이런 사상과 문장을 가진 조선을 일본이 식민지화하였다는 것이 처음부터 잘못이었다고 개탄하였다고 하지 않는가? 말과 글은 문화와 역사의 중심이다. 이를 통하여 얼과 혼이 흘러간다. 이것이 인문이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