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장례식날 떠오른 평화의댐·강변도로·체신혁명 ‘단상’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평화의댐은 높이 161m, 저수량 27억톤이다. 일제가 화천댐을 만들고, 박정희 대통령이 소양강댐을 만들었다고 하면, 전두환 대통령은 평화의댐을 만들었다.
평화의댐에 이르는 길은 대부분 산을 뚫어 길을 새로 만들었다. 평화의댐을 관광하러온 중국 관광객에 화천댐 공격에서 중공군이 시산혈해屍山血河였다고 하면서 함부로 장진호전투를 입에 담지 말라고 하니 당황해 하는 눈치였다.
한강변의 강변도로를 건설하여 수도권 홍수를 막고 교통이 원활해졌다. 지금 강변도로가 없다면 서울 교통난이 어떻게 되었을까? 젊은이들은 강변도로가 전두환 시대에 건설된 것을 모를 것이다.
청계산은 전쟁지도본부다. 1956년 이승만 대통령 당시에 미8군에 의해 처음 조성됐지만 전두환 당시에 다시 만들어졌다. 영화에 나오는 미국의 전쟁지도소 그대로다. 전시에는 한미연합사령부와 우리 전쟁지도본부가 그대로 들어간다. 언론인 등 민간인은 가을 을지훈련에 들어와 보면 놀란다.
박정희 당시 경부고속도로를 놓을 때 난공사 지역에는 공병부대가 대거 투입되었다. 한국의 세계적인 토목공사 기술이 작용하였다. 조국근대화는 박정희, 박태준과 함께 정주영의 공이 컸다. 정주영이 대통령선거에 나왔던 것이 우연이 아니다.
전두환은 국보위에 파견된 육사와 박사 출신을 상당수 청와대로 데리고 들어갔다. 내각에 바로 기용한 인사도 많았다. 오명이 대표적이다. 그가 이룩한 체신혁명은 한 정부의 성과와 맞먹는다. 그때까지 양수양도가 가능한 백색전화는 권력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누구라도 전화를 신청하면 바로 나온다. 산골에도 무수한 안테나를 통해 전화가 통한다.
우리 통신망은 미국은 몰라도 유럽보다는 분명히 앞서 있다. 독일에서는 지금도 인터넷 통신망이 통하지 않는 데가 많다. 전두환 정부의 통신혁명은 서민 누구나 감지할 수 있는 위대한 성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