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정부 시위 확산’ 중국과 몰락한 대영제국의 ‘음모와 책략’

11월 28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고강도 코로나19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와 우루무치시 화재 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집회가 함께 진행되면서 시위자들이 거리를 따라 행진하고 있다.

18세기 싸고 좋은 인도의 면직물이 영국에 대거 밀려들어왔다. 유럽에서는 그전까지는 의류는 주로 모직이었다. 영국에서는 면직물이 영국에 너무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인도사람들이 목화를 따지 못하도록 농부의 손을 잘랐다. 해가 지는 일이 없다는 대영제국은 이 같은 무도하고 잔인한 책략으로 이룬 것이다.

중국에서 고급도자기도 쏟아져 들어왔다. 유럽인은 중국도자기를 무척 선호했다. 이를 사기 위해 은이 대량으로 나가자 회수하기 위해 발전시킨 것이 아편 무역이었다. 아편은 진통제로 쓰였지만 장기복용은 치명적인 것이었다. 중국인은 집단으로 병들어갔다. 영국인에 중국인의 건강은 뒷전이었다. 아편으로 막대한 은이 영국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중국은 아편을 막으려 하고 영국은 판매를 계속하려고 해서 일어난 전쟁이 1842년의 아편전쟁이다.

서양에 항거하는 의화단의 난이 일어난 것이 1900년의 북청사변으로 유럽과 미국, 일본의 8개국이 참전했다. 서태후의 치세였던 淸은 항복했다. 이를 영화로 만든 것이 ‘북경의 55일’이다. 이때 일본의 분전을 눈여겨 본 것이 영국이며, 이를 계기로 1905년 영일동맹이 맺어졌다.

영국 식민지 인도로 남하하러 아프가니스탄에 침공한 러시아와 대결하던 영국이 일본군을 인정하고, 청일전쟁 후 일본의 요동반도 점령을 막았던 러시아와 전쟁을 준비하던 일본이 맺어져서 영일동맹이 맺어졌다. 한일합병은 1910년에 맺어졌다. 조선으로서는 不可抗力이었다.

러일전쟁은 오늘날 미국과 중국이 싸우는 것과 같은 대전이었다. 일본은 1차대전에 영국의 동맹으로서 승전국이었다. 이를 깬 것이 일본이 만주국을 만들어 국제연맹에 반기를 든 것이다. 당시 일본은 독일, 소련과 함께 3대 육군국이었고 미국, 영국과 더불어 3대 해군국이었다. 육해군이 세계적 강군인 것은 일본 밖에 없었다. 역사가 토인비가 이 때의 일본을 기적으로 평가한다. 

중국이 민주주의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중국은 이제 겨우 시작이다. 한국의 4.19, 6,29를 겪어야 한다. 베이징올림픽을 치렀다지만 아직 멀었다. 우주선을 올렸지만 망한 소련도 이 점에서 미국과 맞먹는 초강대국이었다. 北京, 上海, 홍콩만 보아서는 안 된다. 지방 중소도시를 두루 깊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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