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북공정과 베이징올림픽

2월 4일 오후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식전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베이징은 이번 동계올림픽 유치로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을 모두 유치한 유일한 도시가 됐다. 특히 베이징 국립 경기장(일명 ‘냐오차오’, 鳥巢·새 둥지)은 이번 대회가 끝나면 하계, 동계올림픽의 개회식, 폐회식을 모두 연 유일한 경기장이 된다.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훔치려는 것은 수(隨)가 113만여 군사를 동원했다가 고구려에 참패한 것이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상 한 무제(漢 武帝)와 더불어 영웅이라고 하는 당 태종(唐 太宗)이 연개소문에 패배를 당해 다시는 고구려를 넘보지 말라는 유훈을 남겼고, 하도 분해서 연개소문을 중국사에는 개소문으로 부른다. 당 고조 이연(李淵)과 이름이 같기 때문이다. 고종에 이르러서야 고구려의 내분을 틈타 멸망시켰으나 뒤이은 나당전쟁에서 매초성 싸움에 크게 패해 밀려났다. 이근행(李謹行)의 당군(唐軍)은 말갈 기병 20만을 잃었고 이에 문무왕의 삼국 통일이 완성되었다. 신라와 당은 오늘날의 평화조약을 맺고 공존에 들어갔으며, 신라는 경덕왕 시절에 불국사를 만드는 등 최고의 번성기에 들어갔다. 백제, 고구려의 유민도 통일신라에 융합되었다.

고려는 일시 칭제건원(稱帝乾元)을 했다. 이것은 중국 인근에 유례가 없다. 발해의 유민도 받아들였다. <삼국사기>를 엮은 김부식은 고구려의 기상을 실현시키려는 서경 천도 등 묘청을 파멸시켰다.

말기에 세계제국을 건설한 몽고의 지배를 받았으나 이 동안에 민족의 정수를 기울인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조선에 이르러 이성계는 스스로 명(明)에 사대(事大)하여 고려 찬탈을 호도(糊塗)하였으며, 병자호란 이후 청(淸)의 제후국이 되었으나 주권은 유지했고, 20세기 들어 일본에 나라를 뺏겼다.

캠브리지 중국사

중국사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1978년에 나온 <캠브리지 중국사>를 볼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나온 책은 중국 중심적 역사 관점이 강하며, 일본은 중국사에 대해서 압도적이지만 잠시 중국의 일부를 지배했기 때문에 중국을 깔보는 편견이 있다. 영국에서 나온 <캠브리지 중국사>는 서구에서 본 중국사를 발전시킨 것으로, 최근 연구 성과도 반영하여 신뢰가 간다.

일본의 조선사편수회는 일본의 한국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고대사를 왜곡하였으며, 민간에 남아 있던 사료를 모아 폐기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발전된 방법론으로 진단학회에 의해 한국사가 집약되고 더하여 재야 사학자에 의하여 상고사 연구가 발전되었다. 건국 이후에는 새로 발견된 일본, 중국의 자료와 역사 연구의 새로운 방법을 추가하였는데, 1998년 10월 17일 시작된 KBS의 ‘역사스페셜’에 집약하여 나와 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문제의 핀란드화’가 나왔을 때 그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말이 맞았다. 러시아는 그의 제안이 ‘사실무근’이라며 정면으로 반박했고 우크라이나도 별로 믿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얼마 전 프랑스 언론이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거를 알리는 오보를 냈을 때 프랑스라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과 일치한다. 거짓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것은 중국이나 프랑스나 늙은 대국(大國)으로서 같다. 신사의 나라 영국이나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다.

중국이 베이징올림픽에서 저지른 행패의 후과(後果)는 오래 갈 것이다. 미국은 키신저 말고 중국을 정상적 나라로 취급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공산당은 사기와 폭력이 일상 생태다. 중국 인민도 억지와 우격다짐이 일상화되어 있다. 중국 사람을 상대하는 데는 조심해야 한다. 중국의 서안西安, 북경北京, 상해上海, 무창武昌, 대련大連 등과 농촌을 보고, 핀란드를 다녀온 경험이 필자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One comment

  1. 후과 는 ‘않좋은 결과’라는 중국말 입니다 ,, 북한에서 중국어를 그대로 들여와 번역한 말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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