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칼럼] 소문의 사회학⑫ 소문·도청과 동거하는 사회
소문은 여전히 살아 있어
소문은 인간과 그 역사를 함께 해온 아주 오래 된 미디어다.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의 사회에서는 오직 입을 통한 전달만이 있었다. 구전(口傳)이 유일한 커뮤니케이션 경로였다. 소문이 소식을 전했다. 평판을 만들어냈다. 어떤 사실을 긍정하고 부정하여 폭동이나 전쟁을 야기하고 반전시켰다. 문자가 발명됐다. 신문이 나왔다. 라디오와 TV가 보급됐다. 오디오 비쥬얼 세상이 됐다. 그래도 소문은 여전했다.
정보홍수가 소문갈증 키워
정보의 부족과 정보전달의 지체현상이 소문을 낳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디어의 발달은 소문의 소멸로 이어져야 한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소문은 더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거기에다 새로이 등장하여 필수품이 된 컴퓨터 미디어. 전달력에 있어서 막강한 파괴력을 행사하고 있다.
누구라도 누구에게나 정보 발신
이 컴퓨터 미디어가 소문에 끼친 영향은? 정보발신기능과 커뮤니티 형성기능으로 대별된다. 먼저 컴퓨터 통신의 발신(發信)기능이다. 정보발신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가리지 않는다. 특히 불특정 다수에게도 발신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심대하다.
전혀 알지 못하는 이에게 거리낌 없이 발신한다. 가벼운 기분으로 말을 건다. 이런 미디어로는 컴퓨터가 사상 최초다. 기실 컴퓨터가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된 최대의 이유는 불특정 다수에게 발신하는 기능을 보유하고 있어서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컴퓨터 미디어는 정보발신자로서의 영향력을 만들어냈다. 기존 매스 미디어의 파워를 약화시켰다. 그러나 그 누구라도 정보를 발신하는 시대의 도래에 일말의 불안감이 내습한다. 소문에 대하여 느끼는 불안감과 같은 불안의 하나는 신뢰성 불안이다.
검증 부재의 컴퓨터 미디어
우선 정보를 보내는 자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그 내용을 신뢰해도 되는가. 종래의 매스 미디어는 기자와 편집자라는 전문가의 검증을 거친다. 컴퓨터 미디어는 그런 검증시스템이 없다. 따라서 미확인 정보, 전문(傳聞)정보, 추측과 억측으로 조립한 정보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배제하기 곤란하다. 다음에 네트 상에서 횡행하는 익명(匿名)정보의 문제다. 자신의 비익과 은닉이 무책임한 발언의 창궐을 초래한다.
불확실한 정보의 확산
확산력(擴散力)을 지닌 전자 네트워크에서는 불확실한 정보가 용이하게 널리 유통된다는 불안감도 있다. 인터넷에 접근하는?사람의 수효가 신문이나 라디오나 TV에 비교되지 않는다. 훨씬 많다.?사회의 방방곡곡과 지구의 이곳저곳에까지 1:1 대인정보를 전달한다. 기존 미디어가 추수 불가능한 유통 파워다.
어느 이념집단이 세 확장을 위해 컴퓨터 미디어를 이용해서 근거 없는 소문을 유포시킨다면? 개인의 파멸과 기업의 도산이 문제가 아니다. 민족, 종교, 인종, 지역, 국가 사이의 내란과 전쟁도 불러 온다.
사이버 커뮤니티
컴퓨터 통신은 네트 속에 사람들이 모이게 하여 커뮤니티를 만든다. 네트 인간관계 형성이다. 직접 얼굴을 맞댈 필요가 없다. 만나려고 일부러 먼 길 떠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지역과 시간의 제약을 받는 사람들이 모인다. 나이가 다르고 직업이 다르고 성(性)이 다른 가운데 결집한다. IT가 만들어내는 세상이다. 사이버 커뮤니티다. 테러집단이 이를 이용하고 있다. 조직원을 모집하고 교육시키고 자살공격을 지시한다. 자금도 흘러들어오게 한다.
정보기관은 군침 흘린다. 사이버를 장악하면 테러도 박멸할 거라는 망상을 한다. 모든 네트의 정보 모두를 감시한다. 사이버 커뮤니티는 문화의 동일성 내지 관심의 공감대를 토대로 우리끼리의 구성원 사이에 퍼지는 가십의 속성과 상통한다.
컴퓨터 미디어는 매스 미디어의 건너편에 있는 개인으로 하여금 정보의 흐름을 주도하도록 조력한다. 집단을 형성하여 영향력도 행사한다.
개인의 발언력과 부작용
전자 네트워크의 발달로 개인의 발언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큰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그저 한 개인의 불평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전파력 때문에 대기업이 항복하고 유명인사가 추락한다. 누구라도 하는 컴퓨터 발언이 부작용도 만들어 내고 있다.
소문의 증폭과 일상의 도청
왕왕 진실이 왜곡되고 사실이 조작된 정보가 만들어져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사이버 명예훼손과 모욕과 중상모략이 횡행한다. 익명성이 사이버 공간을 오염시킨다. 치고 빠지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게릴라 전법인가. 죄책감이 있을 리도 없다.
피해자는 컴퓨터 미디어의 엄청난 순간 전달력과 영향력에 매몰된다. 원상회복은 불가능하다. 네티즌의 에티켓이 외면당하고 있다는 증좌다. 그러나 이를 방치하면 네트워크를 통하여 소문이 소문을 증폭시킨다. 불신사회가 되고 만다.
법으로 처벌하는 방식은 사회규범 확립방책으로서는 하수(下手) 중에서도 하수다.
이 글을 처음 연재하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 당시 화제 중 하나가 무엇이었는가. 핸드폰 도청 가능성 여부였다. 도청되느니 도청 못하느니 설왕설래했다.
첨단기술의 역습(逆襲)
도청이 왜 안 되겠는가. A라는 새 기술 나오면 바로 A’라는 복제기술 등장한다. 얼마든지 통화내용을 엿듣는다.
그래서 핸드폰 안 쓴다? 오히려 손안의 통신기기 핸드폰을 이용한 Social Network Site를 통신의 대세로 만들었다. 기술개발 덕에 별의별 소식과 소문을 실어 나른다. 프라이버시 침해의 위험도 증대했다. 그래도 손에 쥐고 산다.
소문이 일상화된 사회다. 일일이 체크하여 처벌한다? 전수(全數)검열도 가능하지만 도감청(盜監廳)을 허용하면 안 된다.
소통철학이랄까 교신문화가 그래서 필요하다. 자율규제! 소문보다는 사실이 통하는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라는 걸 깨달아 나가는 와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