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칼럼] 소문의 사회학⑥ 지위 높을수록 가십에 귀기울여야
소문이 인간사회의 뉴스 전달수단이라는 좋은 면도 있다. 그러나 인간심리는 소문이라는 현상을 좋지 않게 받아들인다. 가십에는 사회에서 수행하는 기능이 있다. 정보(情報) 전달 기능, 영향력(影響力) 행사 기능, 유희(遊戱) 기능이다.
정보 전달 기능
호가십은 같은 과에서 근무하는 안가십의 모습이 오늘 좀 별나다고 느꼈다.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통하여 무슨 일이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물어보기는 좀 뭣하다. 그냥 지낸다. 안가십의 친구 친가십이 자초지종을 알고 있었다. 친가십은 입이 근질근질해서 안달난 상태다.
끝내 참지 못한다. 친한 사이인 옆가십에게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 애 있잖아, 그거 어떻게 생각해?” 한다. “그 애라니? 누군데?” 옆가십이 반응을 보인다. 여기서 봇물이 터진다. 가십은 유통되기 시작한다. 이처럼 소그룹 내의 어떤 개인에게 일어난 신변잡사 정보는 매스미디어가 전해 주지 않는다. 퍼스널 커뮤니케이션이 당신 귀에 흘러들어가게 해준다.
험담이 전부는 아니다?
가십은 사실만 전하지는 않는다. 조직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잡다한 정보도 날라다 준다. 갑녀가 처음으로 선을 보았는데 물 먹었다. 을남이 과장에게 된통 혼났다는 등은 가십의 좋은 소재다.
그런데 이와 같은 가십은 단순히 일어난 사실 그 자체만 전하지는 않는다. 실패담으로만 구성되지는 않는다.
교훈도 전달한다
물을 먹거나 혼난 사실과 동시에 전해지는 그 무엇이 있다. 듣는 내가 그런 상황에서 당하지 않게 하는 요령도 아울러 은연중에 깨닫도록 해준다.
사실이라는 정보 외에 교훈이라는 유익한 정보도 동시에 유통시킨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게 만든다. 어렵거나 곤란한 상황에서 좌절과 상처 없이 대응하는 정보를 얻기도 한다.
생각의 차이를 깨닫는다
내 키가 큰지 작은지는 잠깐 주위를 돌아보면 간단하게 확인된다. 그러나 내면의 상태는 그렇지 않다. 사고방식이나 행동이 또래나 주위 사람들과 같은가? 다른가? 또는 그들에게 내가 수용되고 있는지 아니면 거부당하고 있는지는 알아내기가 어렵다.
다행히도 가십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가십정보가 조직 내에서의 내 위상을 조정하고 그들과의 접촉행태를 교정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지위가 높을수록 가십에 귀 기울여야
나에 대한 평가는 내가 내 주위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보면 정확하다? 그렇지 않다. 인간의 심리는 묘하다. 대놓고 물어보면 나쁜 얘기는 감춘다. 듣기 좋은 얘기만 하기 마련이다. 면전에서 속마음을 내비치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특히 물어보는 사람이 영향력이 있거나 지위가 높으면? 더욱 그렇다.
비록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 앞에서 그대로 전하기는 매우 어렵다. 말 했다가 불이익을 받거나 곤욕을 치를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가십은 우회하여 사실을 전한다. 특히 나쁜 점은 가십의 내용으로 자주 회자된다.
정 궁금하면 떠다니는 가십에 조용히 귀를 기울여 보라. 듣고 싶지 않는 불쾌한 내 인물평이 거기에 있다. 회사 내에서 내가 처한 불리한 상황에 대한 정보도 있다. 좋은 방향으로 고칠 좋은 기회로 받아들이면 된다. 향후 운신에 도움이 된다.
영향력 행사 기능
가십은 제재(制裁)의 프로세스로도 작용한다. 자기들과는 다른 생각을 하거나 다른 행동을 하려는 사람들을 골탕 먹인다. 그들의 이탈이나 일탈을 가십의 험담을 통하여 비판한다. 뒤에 숨어서 하는 비난이야말로 파괴력이 크다.
집단규범과 동류의식을 강화시킨다
이질성과 이단에 대한 그런 비판에는 어떤 가치가 내재한다. 특정 집단이 공유하는 규범이다. 가십을 통하여 이를 알리고 깨닫게 만든다. 가십의 교환이라는 프로세스를 통하여 어떤 행위가 우리 조직에 좋고 나쁜가를 인식케 한다. 집단규범에의 동조를 강화시킨다. 결국 그룹에 속하는 내부인과 속하지 않는 외부인을 구별하는 기준으로도 기능한다. 경계선 긋는 도구가 된다.
유희(遊戱) 기능
어떤 사람의 무엇에 대하여 몰래 소곤거리는 행동에는 스릴이 있다. 게다가 미소도 짓게 만드는 즐거움도 있다. 가십은 그래서 대화라는 상호작용 행위의 조미료다. 향신료이기도 하다. 대화에 맛이 나게 한다. 재미라는 대화 촉진제 기능을 수행한다.
강자 죽이는 약자의 무기
무언가가 귀로 들어오면 입으로 흘려 내보내는(口耳之學) 우리들 보통사람이다. 길거리에는 뜬소문(道聽塗說)이 퍼져 있다. 가십은 강한 자를 죽이는 약한 사람의 무기(武器)라는 말도 있다. 손에 쥔 거 많을수록 오염되지 않아야 입방아에 오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