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돈, 원칙주의자 ‘민따로’ 1987년 6월 전두환 계엄선포 반대

민병돈 장군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민병돈은 육사 15기다. 생도 시절 독일어는 잘 했으나 나머지는 모두 추가고시를 치러야 했다고 한다. 교수부에 혼자 가면서도 부대가 행진하듯이 팔을 직각으로 흔들었다. 모든 일과 행동이 유별났다. 그래서 별명이 민따로였다. 민병돈은 민비를 꼭 명성황후로 불렀다. 집안의 어른이기도 하지만 일본인의 잔인함과 無道에 대한 분노의 표시였다.

민병돈은 구황실에서 세운 휘문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이것도 그의 자긍심의 뿌리의 하나였다.

민병돈은 특전사에 오래 근무했다. 전두환 1여단장 밑에서 대대장을 해서 전두환은 민병돈을 각별히 아꼈다. 1987년 6월 정국이 혼란의 극에 달하여 계엄령 선포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고명승 보안사령관에 물었다. 그는 연대장 급이 반대하고 있는 군심을 전했다. 전두환은 민병돈 특전사령관에 물었다. 그도 반대했다.

믿었던 민병돈의 답에 전두환은 “특전사령관이 반대한다면 할 수 없지”라고 뜻을 꺾었다. 뒤이어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6.29 민주화선언이 나왔다. 우리가 민주화사회를 누리는 것은 이러한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한 것이다.

노태우 정부에서 민병돈은 육사교장이었다. 졸업식에서 교장이 치사를 하며 대통령에 경례를 생략하는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터졌다. 민병돈은 대통령이 임석할 때 경례했으니 오르고 내릴 때마다 경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지만, 노태우의 북방정책에 불만을 표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청와대에서 일어났다. 정권이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가는 도중에 일어난 간단치 않은 사건이었다. 민병돈은 결국 옷을 벗었다.

장군이 예편하면 대우가 급히 줄어든다. 공관이 없어지고 차량과 운전병도 없어진다. 민병돈에는 예비역 장군에 통상적으로 배려하던 공사 임원은 생각할 수도 없다. 계산해보니 예비역 중장이 받는 연금은 현역 소령 봉급과 같았다. 민병돈은 부인에 생활비를 여기에 맞추도록 부탁했다.

2017년 10월 초 민병돈 장군과 부인, 자택 뜰에서

부인이 지난해 4월 타계했을 때 민병돈은 유달리 깊은 애상(哀喪)을 보였다. 예편 후 홍성태의 한국전략문제연구소(KRIS)에 가끔 나왔다, 둘이 같이 독일 유학을 했고 군인으로서 통하는 면이 많았으며, 존경하는 장군과 학자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홍성태와 민병돈은 독일 학자와 토론할 때 독일어로 소통했다. 미국에서 공부한 학자들이 따라 할 수 없었다.

민병돈의 청렴과 같은 경우로 예를 드는 장군이 남재준 참모총장이다. 남재준은 별명이 생도 3학년이었다. 철저한 원칙주의자였다. 전역식을 마친 후 포니를 직접 운전하여 식장을 떠났다. 대부분 장군은 집에 돌아온 후에야 운전병을 돌려보낸다. 민병돈은 이런 호사(?)도 거절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엉뚱하게 남재준을 직권남용(?)으로 구속했다. 털어도 험이 없는 장군에 겁이 났을 것이다.

민병돈은 홍성태와 더불어 독특한 육사인이었다. 군사문화의 정통과 연원을 알고 맛과 멋을 갖춘 장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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