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략연구소(IISS)와 한국전략문제연구소(KRIS)
한국전략문제연구소는 홍성태 장군이 1987년 설립한 연구소다. 백선엽, 김점곤 장군을 위시한 군 원로와 안병준, 이상우, 유세희 등 저명학자들이 토론에 주로 참여했다. 당대 최고였고 유세희 박사는 한양대 중소문제연구소를 이끌었다. 백선엽 장군에 대해서는 별도의 소개가 필요 없다.
김점곤 장군은 육사 1기였다. 학병 출신으로 소장으로 예편 후 <한국전쟁과 노동당 전략>을 쓰고 경희대 평화연구소장을 지낸 학자였다. 다부동 전투는 백선엽 1사단장 밑의 김점곤 12연대장이 치렀다. 평양 입성도 같다. 6.25 초기전투에서 백선엽 장군의 무공은 김점곤과 겹친다.
김점곤은 창군으로부터 군의 비사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박정희가 부하인 적도 있었다. 그보다도 놀라운 것은 내로라하는 군인과 학자들의 토론에 사회를 보는 능력이었다. 모두의 견해를 모아서 결론을 이끌어 가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다. 홍성태 장군도 이를 본받았다.
한달에 한번 정책 토론회를 가졌다. 연구소에서는 토론 전부를 녹음했다. 이를 국방부 정책실 장교가 정리하면 필자가 점검한 후 홍성태 소장이 국방부에 제출했다. 토론을 지나치게 요약하다보면 진국을 놓칠 수 있다. 엄청난 수고는 했지만 실무자는 최고의 교육이었다고 한다. 현재 전쟁기념사업회장 이상철 박사다.
<Military Balance>를 발간하는 국제전략연구소(IISS)는 전세계에 걸쳐있는 영국의 영향력으로 1958년 생겨났다. 연구소장은 영국, 호주, 싱가포르 등 돌아가면서 한다. 각국의 군사력 현황은 미국에서 받는다. 여러 발간물이 있지만, 소장(Director) 이름으로 나오는 ‘Strategic Survey’가 가장 중요하다. 이를 본떠 1년에 한권 <동북아 전략균형>을 발간했다. KIDA의 권태영 박사가 주관하고 미국, 중국, 일본, 북한 지역 연구자가 군사 전문가가 되도록 했다.
홍성태 장군은 육사 전사과 교관으로 이름을 날렸다. 육군대학 교수부장으로도 후배들 존경을 받았다. 그는 독일 육대를 나와서 독일에서 교수가 오면 독일어로 대화를 주고받아서 대부분 미국 박사들인 토론자들을 놀라게 했다. 물론 육사 독일어과 도움을 받아 사전에 철저히 준비한 결과다. 홍성태 장군으로 인해서 한국전략문제연구소(KRIS)는 전설이 되어갔다.
국방부 산하에 국방연구원(KIDA)가 있는데 연구소가 생겨나는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 공기관은 언론인 등 다양한 민간인 연구자를 모을 수 없다. 둘째, 안보 문제를 아무나 다룰 수 없다. 셋째, 장군 출신을 포함한 예비역이 군과 계속 연관을 가질 수 있는 고리가 된다. 그들의 군 경험과 지혜를 현역에게 전수하는 중요한 통로를 바로 연구소(기관)가 맡을 수 있다.